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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3.12.21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24

7부 선을 넘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3.12.21 12:40 조회 4,1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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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동엽 대표를 기억하며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전주한옥생활체험관 마당이 시끌벅적 소란해지곤 했다 .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진행하던 향음주례를 체험하러 찾아온 수험생들이 날뛰는 소리였다 .

한옥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는 술과 안주가 마련된 십여 개의 소반과 방석이 두 줄로 놓여 있고 , 병풍 앞 정면에는 준 ( 술을 담는 그릇 ), 용작 ( 술을 뜨는 기다란 국자 ), 작 ( 손잡이와 발이 세 개가 달린 의례용 잔 ) 이 놓인 탁자가 있다 .

계영배(戒盈杯)
계영배(戒盈杯)

탁자 아래엔 물이 담긴 유기 대야와 수건이 마련되어 있다 . 학생들이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유생이 되어 자리에 앉으면 이날의 향음주례연을 여는 전통문화사랑모임의 이동엽 대표가 유생들을 맞이했다 .

향음주례 ( 鄕飮酒禮 ) 는 관 , 혼 , 상 , 제 , 상견례와 더불어 육례 ( 六禮 ) 로 정해 향교에서 고을의 어른들을 모시고 젊은이들에게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치는 의식이었다 . 영빈례 , 헌빈례 , 여수례로 나뉜 절차를 요약해 체험이 진행되었다 .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공간에서 서로의 낯선 모습에 장난치던 학생들은 절하는 법부터 배운다 . 공수 , 읍 , 배와 같은 절을 따라 하게 되는데 처음엔 오합지졸이다가 집사의 구령에 맞춰 도포 자락이 마루에 쓸리는 소리만 가득 차는 경이로운 순간이 오게 된다 .

여수례의 시간이 오면 학생들은 유기 주전자에 든 술을 잔에 따라 서로 주고받게 된다 . 아마도 처음으로 마시는 공식적인 음주일 것이다 . 술을 맛본 아이들의 반응은 대개 “ 으웩 !” 소리가 연달아 나왔지만 , 간혹 “ 우와 ~! 맛있다 ” 하는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

다시 소란해지는 와중에 이동엽 대표는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끝낸 학생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일이니 학교가 아닌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소중한 일원이 되어달라 강조하며 탁자 밑에 있던 특별한 술잔을 꺼냈다 .

계영배 ( 戒盈杯 ) 는 밑바닥에 구멍이 있어 잔의 7 부만 따르면 술이 채워지는데 가득 채우면 모두 새어버리는 잔이다 .

이동엽 대표는 두 학생을 불러 직접 계영배를 시연시키는데 구멍이 난 잔으로 술이 채워질 때도 , 술을 가득 따랐을 때 술이 구멍으로 새어 나올 때도 마술쇼를 보듯 모두 신기하다는 탄성을 연발했다 . 학생들에게 계영배가 지닌 의미를 물으면 술을 적당히 마셔라 , 욕심내지 말라는 등등의 대답이 나왔다 .

질문에 답을 얻은 이동엽 대표는 특유의 하회탈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계영배의 뜻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게 된 유래 , 정성껏 빚은 술을 마시는 자세와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 “ 상대가 술을 권하는데 더는 마시고 싶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술이 세다고 과시하는 마음도 어리석지만 , 거절하지 못해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 신입생 환영회에서 대학생이 술을 마시다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이 노인은 며칠간 아픕니다 . 술을 경계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어서 가슴에 큰 멍이 들어요 .

기분 좋게 마시되 내 주량의 한계인 7 부 선을 넘어가고 있다 싶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여러분 마음속에 가지고 있길 당부드립니다 . 모두 그래 주겠소 ?” 십 년도 넘은 기억이니 “ 네 ~” 라고 외치던 학생들은 이제 서른이 넘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겠다 .

사회라는 치열한 전쟁터에 나가 그들이 마주했을 숱한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새하얀 도포를 입은 한 어르신과의 약속을 떠올려 자신만의 7 부 선에서 과음도 , 과욕도 멈출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또다시 연말 , 해가 저문다고 술을 마시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7부 선을 넘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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