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품앗이칼럼 · 2022.08.16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8

술이 익어가는 시간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2.08.16 10:24 조회 4,384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술이 익어가는 시간 5 월 초에 뜯은 쑥으로 중순 즈음에 애주 ( 艾酒 , 쑥을 넣어 빚는 술 ) 를 빚었다 . 먼저 밑술을 빚는다 . 펄펄 끓는 물에 쑥 (700g) 을 넣어 쑥물을 낸다 .

멥쌀가루 (1.5kg) 에 뜨거운 쑥물 (5L) 을 조금씩 부어가며 범벅 ( 죽보다 설익히는 형태 ) 을 익혀 밤새 식혔다가 다음 날 누룩 (600g) 을 섞어 치댄 후 항아리에 담아 2~3 일간 발효시킨다 .

20211225 091959
20211225 091959

3 일째 되는 날 찹쌀 (6kg) 을 맑게 씻어 8 시간 불렸다가 물기를 빼고 고두밥을 찐다 . 2 차 술빚기인 덧술을 하기 위해서이다 . 40 분간 고두밥을 찌다가 고두밥을 위아래로 뒤집어 준 후에 쑥 (150g) 을 고두밥 위에 얹어 15 분간 다시 센 불에 뜸 들인다 .

쑥물이 든 고두밥을 넓게 펴서 식혔다가 소독해 둔 대야에 옮겨 담아 준비해 놓은 밑술을 부어 섞는다 . 이때의 밑술에는 효모와 효소 , 젖산균이 대량으로 증식되어 있어 누룩보다 훨씬 강력한 발효제의 역할을 한다 .

누룩 600g 으로 쌀 7.5kg 을 발효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밑술과 덧술로 두 번에 걸쳐 술을 빚는 이양주 ( 二釀酒 ) 양조기법에 있다 .

적은 양의 누룩을 쓰고도 높은 알코올 도수와 누룩취 ( 완성된 술에서 나는 누룩곰팡이 냄새로 술의 향을 나쁘게 하는 대표적인 이취 ) 가 없는 향기로운 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법이다 .

밑술이 고두밥에 고루 스며들 때까지 잘 섞어주는데 , 술덧 ( 고두밥과 물 , 누룩 , 밑술 등의 혼합물 ) 이 되직해지면 항아리에 옮겨 담아 이불을 씌워 3~4 일간 발효시킨다 . 범벅을 쑤기 시작한 날로 꼬박 7~8 일이 걸린다 .

덧술이 끓어 오르는 주발효 기간 동안 술독 안의 세상은 마치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를 연상케 한다 . 격정적이고 예민하지만 , 어느 때보다도 향기롭다 . 힘을 키워주되 과해지지 않도록 살펴야 하는 일이 관건이다 .

봄철의 실내온도 22~23 도로 시작해 술독 품온 ( 술독 내부 온도 ) 이 36~37 도까지 오르도록 노심초사 지켜봐야 한다 . 온도가 오르지 않으면 오르도록 방 안 온도를 올려주고 , 너무 빠르게 오르면 이불을 걷어내어 속도를 늦춰주기도 한다 . 38 도를 넘지 않게 살펴야 한다 .

알콜발효 미생물인 효모는 38 도 이상의 고온에서 사멸하기 때문이다 . 덧술의 주발효가 정점에 올라 36~37 도 이상 온도가 오르고 술독 안에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 코를 찌르면 술독을 집안에서 가장 서늘한 곳에 옮겨 차게 식혀야 한다 .

이 시기를 놓치면 술이 과발효 되어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고 시어져 지금까지의 노고가 수포가 된다 . 햇빛이 들지 않는 북향의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를 선택하면 된다 . 봄이라 해도 밤사이 기온이 써늘할 정도이기 때문에 술독을 냉각시키고 후발효 시키기에 적당하다 .

다만 일정하게 서늘한 온도에 술독을 놔두는 것이 관건인데 일교차를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 따른다 .

6 월 중순까지 후발효와 숙성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데 낮 기온이 23~24 도를 넘으면 술독을 대야에 담아 얼린 생수통이나 아이스팩을 끼워 놓고 , 선풍기까지 동원해 온도를 낮추느라 사투를 벌여야 한다 . 술을 빚고 한 달 , 이 시기에 일어나는 후발효와 숙성 과정은 술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

잔여 알코올이 생성되면서 술의 맛과 향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 그러니 밀주의 시대를 지난 요즘 시절에 열흘 만에 혹은 보름 만에 술을 빚어 마신다고 하면 제대로 익을 시간을 주지 않는 성급함에 씁쓸해진다 .

주발효 동안의 질풍노도는 잦아들고 성큼 자란 아이처럼 술독 안은 발효가 끝나 차분해지며 술덧이 끓어 올랐다 내려간 흔적이 띠를 두르고 남게 된다 .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술독을 맴돌아 방안에 온통 술향을 퍼트려 놓는다 .

과일향이나 꽃향에 비유되는 아름다운 향이 나는데 , 쌀 , 물 , 누룩만으로 어찌 이런 향이 태어나는지 신기할 뿐인 나는 이 향기에 매료되어 어쩌자고 여름을 코앞에 두고 술을 빚었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술이 익어가는 시간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