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燒酒), 차갑고도 뜨거운 술을 잘 빚는 고수의 술장고에는 마실 술이 가득하지만 , 술을 잘 빚지 못하는 나의 술장고에는 소주내릴 술만 가득하다 . 이 술들을 어찌할꼬 .
쓴맛이 강한 술 , 시어진 술 , 단맛만 나는 술 , 알코올도수가 낮아 싱거운 술 , 빚은 지 오래되어 느끼한 술 등등 실패의 결과는 다양하기도 하다 . 온 정성을 쏟았건만 , 술맛과 정성은 정비례하지 않으니 좋은 술은 발효의 과학을 터득한 사람만이 받는 선물임을 깨닫곤 한다 .
술빚기는 예민한 과정이어서 잦은 실패가 따르지만 , 천만다행으로 실패를 만회할 최후의 방법이 존재한다 . 주질 ( 酒質 ) 이 떨어지는 술들을 모아 소주라는 새로운 장르의 술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 발효주와 증류주 , 즉 청주와 소주는 다른 장르의 술이다 .
로맨스 영화와 SF 공상과학 영화처럼 다른 범주의 술이다 . 과실이나 곡물을 미생물의 활동으로 발효시켜 얻은 알코올도수 20% 이하의 발효주를 증류해 대략 40~50% 대를 유지하는 알코올과 증류수 , 원주 ( 소주를 내리기 위해 끓이는 발효주 ) 에서 응축된 맛 성분과 향으로 이뤄진 소주를 얻는다 .
세계의 모든 증류주는 나라마다 다른 원료와 증류장치로 만든다 해도 발효주를 끓여서 기화되는 알코올을 냉각시켜 얻는 방법적 원리는 같다 .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 ,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처럼 쌀이나 곡물로 빚은 청주 , 탁주 , 막걸리를 증류한 우리나라식 전통 증류주는 소주 ( 燒酒 ) 다 .
전통방식의 증류식 소주를 내리기 위해서는 소줏고리라는 증류장치가 필요하다 . 옹기로 된 8 자 모양의 소줏고리는 하체 ( 솥과 연결된 가열부 ) 와 상체 ( 냉각수 자배기와 연결된 냉각부 ), 액화된 소주가 모여 내려오는 기다란 귓부로 구성되어 있다 .
솥에 청주를 붓고 낮은 열로 뭉근하게 끓이다가 소줏고리를 올려 기화된 알코올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솥과 소줏고리의 틈새를 시룻번 ( 가래떡처럼 늘인 밀가루 반죽 ) 으로 붙여 메운다 .
술이 뜨끈하게 데워지면 알코올이 물보다 먼저 증발하여 소줏고리 윗단으로 모여지는데 이때 뚜껑처럼 소줏고리를 덮고 있는 오목한 자배기에 차가운 물을 계속 갈아준다 . 기화된 알코올이 차가운 냉각수 자배기에 부딪혀 이슬처럼 액화되어 귓부를 타고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주를 받는다 .
1490 년 성종 때 “ 세종 때는 사대부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이 막대하게 드니 ,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 며 고한 조효동의 상소문에서 보듯 15 세기 말 조선에서도 소주가 얼마나 사치스럽고 경계하고자 했던 술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물처럼 맑으나 응집된 향을 품고 , 눈처럼 차가우나 데일 듯 뜨거운 불을 품은 소주는 단연코 겨울의 술이다 . 무색투명함 그 어디에 꽃다발처럼 응축된 향을 품고 한 모금 머금으면 부드러운 단맛 속에 뜨거운 불꽃이 폭죽처럼 터지며 목을 타고 내려간다 .
이내 가슴에서 뜨거운 불이 솟아오르면 제아무리 영하의 찬바람도 맞서볼 용기가 난다 . 봄을 목전에 두고 겨울이 더 매서워지는 즈음 , 일신은 자꾸만 노쇠해지고 이제껏 살아온 길에 후회나 주저함이 덩달아 몰려들 때 한 잔의 소주를 마셔보자 . 불끈 솟구치는 뜨거움 속에 일체의 망설임을 녹여버리자 .
실패한 술들을 불길에 살라내어 재탄생한 소주처럼 실패를 만회할 방법은 누구에게나 있다 .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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