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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8.06

유송이와 술과 함께 열두 달 32

수을고래, 옛 술이 오다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8.06 12:45 조회 4,0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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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을고래, 옛 술이 오다 <수을고래>는 함께 술빚기를 배웠던 인연으로 2017년에 결성해 7년째 이어지고 있는 12명의 주당모임이다. 술의 고어인 ‘수을’과 ‘옛것이 오다’라는 뜻을 결합해 ‘옛 술이 오다’라는 뜻인데, ‘술고래’ 주당들의 모임이란 부차적인 의미에도 자부심이 강하다.

과제주를 정해 각자 빚어온 술을 품평해 보는 등 술에 관한 주제를 정해 계절에 한 번씩 모이는데, 이번 여름 모임 주제는 누룩 빚기였다. 누구는 연잎을 따오고, 누구는 누 룩틀을 준비하고, 밀을 준비하고, 품앗이처럼 누룩을 밟아 주며 내년 술 농사를 함께 준비했다.

누룩 빚는 수을고래 회원들
누룩 빚는 수을고래 회원들

수을고래에는 세 가지 유형의 술고래가 있다. 먼저 타고난 주인(酒人)이다. 주인은 술을 빚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술을 마시는 것보다 빚는 것이 행복한 연금술사의 후예들이다. 내가 마시는 것보다 자신이 빚은 술을 맛보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더 큰 만족을 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은 술을 빚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비법 공유가 주된 화제여서, 다양한 술빚기 노하우와 경험치가 술술 쏟아져 나온다. 이들의 술장고에는 실험적으로 빚어낸 술들이 가득 차 있다. 다음은 타고난 주당(酒黨)들이다.

술을 빚는 것보다는 마시는 것에 달관하여, 술맛을 찾아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이들이다. 이들의 술 마시는 속도는 절대 성급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함께 물 흐르듯이 음주는 이어지며, 낮과 밤, 하루와 이틀의 구분이 없다.

혀끝의 감각이 누구보다도 뛰어나 가장 좋은 술맛을 찾아내지만, 결국엔 가장 좋지 않은 술까지도 다 마셔버린다. 명주를 찾아 나서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며, 한 잔의 술로도 한나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주선(酒仙)의 경지에 이른 이다.

장수에서 술공방을 운영하는 하영택 씨는 조용하면서 유쾌한 사람이다. 술을 마시다 취흥이 돋으면 그는 피아노로 향한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열띤 대화를 이어갈 때 갑자기 피아노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선율이 나오면 주당들이 함께 나서 노래를 부르고, 흥이 고조되는가 싶으면 이내 얼후(중국의 현악기)를 켜서 애절한 소리로 주변을 가라앉힌다. 얼후를 켜는 그의 표정에선 시끌벅적한 모임 한가운데서 홀로 벗어나 달 밝은 강물에 배 띄워 유유자적하는 이태백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먹고 살기 바쁜 시절에 한가로운 술타령인가 싶고 어지간한 한량들의 이야기로 들리겠으나, 우리술을 제대로 빚고, 연구하고, 이야기하고, 즐 기는 모임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여러 차례 언급했던 밀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술은 여러 혼재된 모습 속에서 이제야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더욱 우리가 시급히 찾아가야 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 일그러진 우리의 음주문화다. 술을 멋스럽게 즐기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다음 세대에게 의미있는 유산이 될 수 있다.

세대가 세대를 이어야 문화가 되고, 사람마다 품격있게 마시는 음주문화가 체득되어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한 술고래들이 넘쳐나 광기와 폭력을 확산하는 악의 근원이 아닌 삶과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고 인류의 오랜 문명을 이어준 중요한 발효음식의 자리로 술의 위치를 되돌려 놓아주기를 고대한다. / 유송이 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장 사진

수을고래, 옛 술이 오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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