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세례 愛情洗禮 나무 밑에 앉아있기만 했는데 … 몇 달 째 세워놓기만 했던 자전거를 타고 나올 만큼의 기운이 돌아왔다 . 어제는 만경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고산에 갔다 .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도 바람은 덥고 무거웠다 .
그래도 진한 초록 잎을 달고 그만큼 진한 풀냄새를 뿜어내는 나무 밑을 달리는 기분은 좋았다 . 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 긴 무기력의 터널이 끝나가는 지도 모르겠다 . ‘ 서쪽 숲에 네발 요정이 내린 커피 ’ 라는 긴 이름을 가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우울합니다 , 외롭습니다 , 괴롭습니다 , 돈 벌 일도 걱정입니다 하도 읊고 다녔더니 짜잔 , 일자리가 생겼다 . 심심합니다 ,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 재미도 있고 의미 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하니 오호라 , 새로 생긴 고산청소년센터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보자고 한다 .
우울하든 말든 때 되면 배가 고파지는 나를 먹여살리기 귀찮은데 어찌 알고 동네부엌 ‘ 모여라땡땡땡 ’ 의 요리사 선생님들은 뭐라도 챙겨주신다 .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밥도 나오고 , 떡도 나오고 , 일도 생겼다 . 쌀이 떨어져가길래 농부님께 쌀을 주문했더니 선물이라며 주고 가신다 .
어느날 갑자기 달걀 한 판을 먹으라며 주시는 분도 있다 . 식당에서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밥을 사주시고 , 아 진짜 , 다들 왜 그러세요 . 원래 이렇게 사람은 다른 이를 챙기고 사는 것인가요 ? 기꺼이 나를 함께 길러주고 계신가요 ? 고마운 마음만큼 씩씩하게 잘 살면 되는 것인가요 ?
나는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걸까요 ? 그렇지만 삐딱한 나는 이렇듯 애정이 넘치고 주위를 돌보는 고마운 마음들에 ‘ 우리동네만세 ’ 를 부르지는 못하겠다 .
도시에 살 때도 , 여행을 다닐 때도 고마운 사람은 많았으니까 , 굳이 여기라고 더 감동하지는 않을 테야 , 라고 일부러 더 별일이 아닌 취급을 한다 . 그렇지만 눈물이 많은 나는 달걀 후라이를 할 때마다 , 밥을 지을 때마다 , 얻어온 반찬을 먹을 때마다 엉엉 울고 만다 .
어떻게든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한다 . 별일이면 어떻고 별일이 아니면 어떠랴 , 나는 지금 여기에 살고 , 주위엔 고마운 사람이 많고 , 여전히 사는 건 심심하지만 , 역시나 어디서든 사는 건 심심할 테니까 . 오늘의 감동을 일부러 축소시키지는 말아야겠다 .
그러다보면 나도 흔쾌히 마음을 내는 고마운 어른이 되겠지 . 마음껏 고마워하고 , 맛있게 먹고 , 맡은 바 성실히 일하고 , 우선은 그렇게 살겠습니다 . /바닥(badac) 이보현(귀촌인. 자급을 지향하는 독립생활자. 무엇이든 만들고 뭐라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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