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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4.05.21

영미씨의 육아일기

내 아이를 볼 수 없다는 끔찍한 상상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4.05.21 20:14 조회 5,3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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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제하가 눈을 찡그리며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숨 넘어갈듯 한 웃음소리도 귀가에 맴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확 번진다. 늘 아른거리고 보고싶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다가 우리 애를 갑자기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서늘하고 가슴이 죄어왔다.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다. 한동안 세월호 참사로 힘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우리 아기. 출근할 때 몇 번이고 아가 볼을 비비고 "엄마 갔다 올게."라 말하며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집으로 돌아 올 때는 근처에 다다르면 뛰기 시작한다.

도착하자마자 아가를 품에 꼭 안고 뽀뽀하고 너무 행복하다. 이런 아가를 어느 날 갑자기 만질 수도, 안아볼 수도, 부를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지옥이 따로 없다. 한동안 내 질문은 “어떻게 이럴수가!”였다.

‘탈출 한 선원들 중 단 한명도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탈출하라는 방송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단 말인가?’, ‘구조가 급박한 시간에 민간구조업체의 실적을 위해 다른 잠수부를 투입시키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구조된 아이들을 붙들고 죽어가는 친구들에 대해 묻는 기자들 중 왜 누구도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먼저 헤아리지 못했을까?’ 모든 것이 다 의문투성이다.

어떤 구조적인 문제와 고질적인 관행을 탓한다 하더라도 계속 되돌이표처럼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를 반복한다. 문득 학교 수업에서 들었던 ‘아이히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히만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이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재판 당시 아이히만의 정신을 감정한 정신과 의사는 “아이히만은 나보다 더 정상”이라고 탄식했다. 이 재판과정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라는 사회학자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내놓았다.

이번 일을 보면서 무수한 아이히만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성찰 없는 기계적인 행동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무수한 변명과 무책임한 아주 일상적인 행동들이 아이히만의 망령을 깨우고 있다. 아프고 슬프다. 이제 제발 이런 일이 그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들 이런 생각이다.

슬픔이 사라지기 전에 분노가 누그러지기 전에 내 안에 숨어 있는 내 안의 ‘악’의 씨앗을 확인해 보자. 이참에 EBS 지식채널 e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를 보기를 권한다. 내가 ‘선’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나’에게 달렸다. 아이들이 보고싶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어라.

미안하다. /고산 제하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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