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산자락 풍경이 싱그럽다 . 말 그대로 짙은 녹음 . 어라 ? 그 새 밤꽃도 피었네 ! 그러고 보니 울려오는 산새 소리가 이따금 “ 유월 ~ 유월 ~” 로 들린다 . 농사꾼에게 6 월은 모내기철이다 . 모내기를 열흘 남짓 앞둔 지금은 한창 논배미를 만드는 때다 .
써레질을 앞두고 논바닥을 잘게 부수는 ‘ 로터리치기 ’, 물 잡고 물꼬내기 , 논두렁 다지고 풀베기 ... 모내기가 끝나는 이 달 하순까지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삐 돌아갈 참이다 . 거 참 , 이 시점이 좀 애매하게 됐다 .
시작도 안 한 모내기 얘기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 그렇다고 시답잖게 논두렁 풀 베는 얘기를 쓰기도 그렇고 . 해서 보름 전 일이라 ‘ 시의성 ’ 은 좀 떨어지지만 집들이 얘기를 해볼 테다 .
보통 집들이와 달리 제법 유난을 떨기도 했거니와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테니 기록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겠다 싶기 때문이다 . 내가 오십 줄을 한 참 넘어 손수 집을 짓게 된 사연과 공사과정은 이 꼭지에서 띄엄띄엄 다룬 바 있다 .
요컨대 동네사람들이 힘을 보태 함께 지어주는 바람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 지난 5 월초에 이사를 했다는 얘기 . 그렇게 이사를 하고 보니 여기저기 “ 빨리 집들이 하라 ” 는 성화가 빗발쳤다 . 집짓기에 워낙 많은 이의 신세를 지나보니 은근슬쩍 넘어가기는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 .
그렇다고 관계망에 따라 잔치를 벌이자니 끝이 없을 것 같고 . 게다가 시골살이의 관계망이라는 게 두부 자르듯 나누기도 모호하고 .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잔치를 단번에 해치우기로 했다 . 그리하면 잔치 준비에 드는 부담도 되레 덜 할 듯싶었다 . 열흘 전에야 날짜를 잡고 , 준비에 들어갔다 .
‘ 완공축하 작은 음악회 ’ 라는 콘셉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터라 프로그램을 짜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진수성찬 차려 먹고 마시는 잔치가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 공연 출연진 또한 서툴지라도 동네사람들로 채웠다 .
동네를 주름잡는 재주꾼들이 너도나도 행사기획팀에 합류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주었다 . 집지을 때부터 동네사람들 신세를 많이 지다보니 잔치 준비에도 태연히 손을 벌릴 만큼 낯이 두꺼워졌다 .
음악회에 필요한 음향과 집기 따위는 고산에 자리를 잡고 연중 문화행사 ‘ 스테이 풀리시 (Stay-foolish)’ 를 주관하는 기획사의 도움을 받았다 . 역시 고산에 터 잡은 우리집 시공사 서쪽숲에나무집은 계단을 타고 오르는 어마어마한 (?) 무대를 설치해주었다 .
아무리 소박한 잔치라지만 음식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 이 고장 로컬푸드 음식점에 맡길 요량이었는데 휴일엔 출장서비스를 하지 않는다지 않는가 . 일이 궁해지니 믿을 건 또 동네사람들 뿐 . 동네 공동부엌 ‘ 모여라 땡땡땡 ’ 운영진한테 사정했더니만 그 자리에서 승낙해주었다 .
나아가 솜씨 좋은 누구는 전 붙이고 , 누구는 콩나물국 끓이고 , 누구는 강된장 만들고 ... 동네사람들을 엮어냈다 . 함께 준비하고 , 함께 즐기는 시골마을의 옛 전통이 되살아난 듯했다 . 마침내 잔칫날 . 작은 산자락에 자리 한 동네가 와글거렸다 .
다들 살짝 상기되어 “ 무슨 면민의 날 행사 같다 ” 고 . 이어진 동네 아이와 어른들 , 실력을 갖춘 ‘ 프로 뮤지션 ’ 의 공연에 연신 앙코르를 외치며 환성을 내질렀다 . 이 특별한 집들이의 여운은 초여름 밤이 이슥하고 , 쌀쌀한 밤공기에 모닥불을 피울 때까지 가시지 않았고 .
잔치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그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흥이 살아난다 . 이번 일로 기둥뿌리가 얼마나 흔들렸는지는 모르지만 , 이리 함께 즐기는 판을 마련한 것으로 나는 족하다 . /차남호(비봉면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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