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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17.07.03

농촌별곡

김매기 삼매경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17.07.03 14:40 조회 5,3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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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 대신 김매기 고된 노동에 구슬땀이 알알이 맺히는 시절 . 논배미마다 논풀은 쑥쑥 올라오고 ,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 간밤에 제법 비가 내려 논배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길 . 좀 심란하다 .

장마가 시작돼 해갈이 되는 건 다행이지만 , 그 사이 무성해진 풀을 맬 일이 걱정이다 . 어떤 곳처럼 논바닥이 갈라지고 모가 타죽는 지경은 아니지만 이 고장 또한 오랜 가뭄에 애를 태워왔다 .

관정을 파도 물이 안 나와 오직 하늘에 기대 벼농사를 지어왔던 논은 아예 모내기를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 웬만큼 관개시설을 갖췄다 하더라도 방류를 제한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 물꼬싸움 ’ 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도 거칠어졌다 .

우리 논 다섯 배미가 들어선 안밤실 분토저수지는 지금 열흘 가까이 수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 가뭄으로 수위가 바닥을 기면서 빚어진 일이다 .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려 수위가 좀 올라갔지만 ‘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 수문은 여적 굳게 잠겨 있다 .

그 바람에 저수지 물에 기대고 있는 논배미는 그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 논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은 피를 비롯한 호기성 잡초가 싹을 틔워 자라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 나아가 잡초를 뜯어먹으라고 풀어 넣은 왕우렁이가 제구실을 못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

그러는 사이 잡초가 부쩍부쩍 자라 억세지면 나중에 물을 깊이 대더라도 왕우렁이가 뜯어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러면 ?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풀을 매줘야 한다 . 그것이 김매기다 .

올해로 6 년째 , 외곬으로 유기농을 고집하다보니 이제는 “ 사서 고생허덜 말고 그냥 제초제 뿌리시게 !” 같은 얘기를 하는 이는 없어졌지만 ‘ 그 놈의 가뭄 탓에 ’ 괜히 고생한다는 분까지 풀리지는 않는다 .

해마다 7 월이 되면 “ 올해는 김매느라 얼마나 고생할지 ” 신경이 곤두서는 건 그 때문이다 . 자연 지난 기록을 떠들어보게 되는데 재작년은 6 시간 만에 싱겁게 끝냈고 , 지난해엔 보름 남짓 욕을 본 것 같다 . 올해는 ?

그저께 시험 삼아 샘골 두 배미를 매 봤는데 , 잡초가 많이 올라오지 않았고 아직은 어린 편이라 왕우렁이의 활약을 기다려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하지만 어제 김매기를 시작한 문제의 안밤실 배미를 떠올리면 숨이 막힌다 .

아침나절 , 호철 씨는 맨손으로 피를 뽑고 , 나는 ‘ 싹쓸이호미 ’ 라는 농기구로 잡초를 흙속에 파묻는 중경제초를 했지만 중과부적 . 뙤약볕까지 내리쬐는 바람에 기진맥진 하여 점심을 핑계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다 . 그러니 앞으로 걱정이 한 짐 아니겠나 . 김매기 .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농사꾼의 숙명 같은 것 . 고요한 논배미에 들어서 풀을 매다보면 어느 순간 빠져드는 ‘ 무아의 경지 ’ 를 두고 ‘ 삼매경 ’ 이니 ‘ 황홀경 ’ 이니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벼농사가 얼마나 고단한지 상징하는 작업이다 .

하여 어차피 그렇다면 조바심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 일을 모두 끝내는데 일주일이 걸릴지 , 열흘이 걸릴지 해봐야 알겠지만 되는 대로 쉬엄쉬엄 , 느긋하게 해가자고 . 김매기가 끝난다고 농사가 끝나는 건 아니니까 . 곧바로 덧거름도 줘야 하고 , 다시 한 번 논두렁 풀도 베어줘야 하고 ...

나락을 거둬들이는 그날까지 농사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을 것이니 괜히 애태우지 말자고 . 보름쯤 지난 이달 중순에는 ‘ 양력백중놀이 ’ 판 벌여서 한 박자 쉬어도 가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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