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밥맛 요 며칠을 ‘ 하늘 쳐다보는 낙으로 ’ 살았다 . 코발트빛 새파란 바탕에 조각구름 또는 뭉게구름 , 때로는 새털구름이 둥둥 떠 있는 풍경은 사람의 심성 깊숙한 곳에 숨은 감탄본능을 일깨우고도 남는다 . 마침내 가을이 온 것이다 . 결코 식을 것 같지 않던 초유의 무더위도 시나브로 물러갔다 .
처서가 고비였으니 , 누구라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을까 . 이렇듯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싸고돌지만 , 기후변화가 몰고 온 뜨거운 여름을 결코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 사실 더위가 꺾였다고 , 가을이 왔다고 마냥 들뜨기에는 기후환경이 심상치가 않다 .
가을이 순식간에 찾아든 길목에는 ‘ 늦장마 ’ 가 함께 했다 . 그 바람에 논배미의 벼 포기는 몸살을 앓았다 . 거센 비바람이 막 고개를 내밀고 가루받이를 하던 벼이삭을 덮친 것이다 . ‘ 백수현상 ’ 이라고 , 수정이 제대로 안 돼 여물지 못한 낱알이 솔찬이 눈에 띈다 .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 하긴 풍작이라고 해도 크게 기껍지가 않은 게 오늘의 농업이다 .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되풀이하는 넋두리 , 흉작이면 당연히 걱정이고 풍작이라도 쌀값 떨어질까 걱정이다 . 쌀수입을 전면 개방했지만 ‘ 의무수입물량 ’ 은 그대로여서 쌀은 늘 남아돌아 처치곤란인 지경이다 .
쌀 소비량마저 갈수록 줄고 있다 . 입맛이 서구화돼 고기소비가 늘어난 결과다 . 더욱이 지난해 4 월 < 밥상 , 상식을 뒤집다 - 탄수화물의 경고 >(MBC 스페셜 ) 라는 편향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음을 나는 피부로 느낀다 . 직거래 쌀 주문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
이 적은 지면에 시시콜콜 반론을 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기만 하다 . 엊그제 농촌진흥청에서 마련한 < 농식품 소비트렌트 발표대회 > 를 제 발로 찾아간 것도 그런 답답함 때문이다 . 요컨대 ‘ 집밥 ’ 을 해먹는 경우가 줄어드는 가운데 소득이 많을수록 , 나이가 적을수록 쌀을 덜 먹는다는 거다 .
내 관심사인 친환경 ( 유기농 , 무농약 ) 쌀의 경우 , 사 먹어본 사람은 전체의 15% 도 안 되는데 , 그나마 사먹는 횟수는 스무 번에 한 번 꼴이라고 한다 . 이와 관련해 발표자들은 학교급식 확대 , 도시락 • 냉동밥 같은 가공품 투자확대 따위를 해법으로 내놨다 .
근거가 있는 해법이지만 나처럼 직거래로 쌀을 공급하는 농가엔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대책이다 . 농사라는 게 사실 ‘ 판로 ’ 에 달려 있으니 너도나도 판로확보에 머리를 싸맨다 . 어찌어찌 하여 판로확보에 성공해도 그걸 유지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
공급하는 농산물의 품질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걸로 끝인 게 시장논리 아닌가 . 결국은 품질이라는 얘기다 . 초과공급인 쌀은 더더욱 그렇다 . 그러니 농협과 작목반 같은 생산자단체는 미질을 높이는데 온힘을 기울인다 . 고품질쌀 생산기술을 연구해 그 내용을 쌀농가에 보급하느라 애를 쓴다 .
직거래로 소비자에게 쌀을 공급하는 나로서는 ‘ 사활이 달렸다 ’ 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은 ‘ 건강한 쌀 ’ 은 기본이고 밥맛도 갖춰야 한다 . 소출이 줄어들더라도 밥맛을 좋게 하려 질소질 거름을 줄이는 따위의 노력을 기울인다 . 집밥이 되살아나는 날을 꿈꾸면서 .
두 달 쯤 지나면 지금 여물고 있는 나락을 거둬들이게 된다 . 작년산 나락은 아직도 창고에 쌓여 있지만 다행히 많은 양은 아니다 . 곧 ‘ 마지막 방아 ’ 를 찧는다 . 햅쌀을 만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차남호(비봉면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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