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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앗이칼럼 · 2024.07.18

농촌별곡

가뭄과 김매기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4.07.18 10:47 조회 4,0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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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김매기 김매기 엿새째 .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더라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 김매기로 말하자면 벼농사 짓는 농사꾼의 숙명이다 . 가뭄이 극심했던 7 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 뒤적여보니 꼬박 6 일 , 실제 작업은 22 시간을 매달렸노라 그해 기록은 말하고 있다 .

올해는 그 기록마저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 안밤실 네 마지기 배미가 문제다 . 오늘 아침나절까지 20 시간 가까이 김을 매고 있지만 여적 거기를 못 벗어나고 있다 . 다른 배미에는 거의 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유독 이곳만 말썽이다 .

여기 물을 대주는 분토 저수지 수문이 지난해 장마에 무너지면서 제방공사가 진행 중인 까닭이다 . 올해 말에 가서야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없었는지 ‘ 늑장행정 ’ 에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나중에야 공사일정을 알게 되어 뒤늦게 어찌해 볼 도리도 없었다 . 가뒀던 물을 모두 빼내고 공사를 진행해 이 일대 논배미는 졸지에 ‘ 천수답 ’ 신세가 되고 말았다 .

게다가 일이 꼬이느라고 올해는 모내기철 가뭄이 오래 이어졌다 . 쫄쫄쫄 흐르는 농수로 물을 근근이 모아 어찌어찌 모내기는 마칠 수 있었지만 논바닥이 마를 수밖에 . 들녘이 메말라가니 농부의 속도 타들어 가고 < 가뭄 >( 김민기 ) 이라는 노랫말이 한동안 입안을 맴돌았다 .

논배미에 물이 모자란다고 벼가 말라 죽을 일은 없다 . 문제는 논바닥이 드러나면 잡초가 발아해 쑥쑥 올라오기 좋은 환경이 되고 , 왕우렁이도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점이다 . 논배미가 풀밭으로 둔갑해버렸다 . 그러고 나서야 장마가 시작됐다 . 늦어도 너무 늦었다 .

지난 몇 해 동안은 물관리 요령에 눈이 틘 덕에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없었더랬다 . 올해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 두 눈 번히 뜨고 ’ 잡초가 올라오는 걸 지켜보는 ‘ 폭폭한 ’ 처지가 된 것이다 .

처음엔 부아가 치밀긴 해도 “ 몇 년 만에 몸 좀 풀어보겠네 ~” 호기를 부리면서 논배미 안으로 향했다 . 역시나 피 , 물달개비 , 여뀌바늘 , 올방개 ... 풀이란 풀이 ‘ 창궐 ’ 하고 있었다 . 손아귀를 바삐 움직여 뽑아내고 그러모아 논두덕에 던지거나 파묻는 노동 .

그 익숙한 리듬이 되살아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논배미에 갇힌 농부는 ‘ 삼매경 ’ 에 빠지게 되어 있지 . 찌는 더위만 아니라면 ‘ 황홀경 ’ 에 이를 수도 있는 ‘ 무아의 경지 ’... 어쩌고 하는 얘기가 이어질 수도 있었을 터 . 하지만 그러기엔 논배미 상황은 너무 처참했다 .

잡초가 번진 면적도 생각보다 훨씬 넓고 , 빽빽이 들어찬 잡초는 손가락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억셌던 것이다 . 결국 기계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 작업 나흘째부터 이름도 그럴싸한 < 논다매 >, 예초기에 장착해 쓰는 중경제초기를 동원했다 .

예초기 칼날 부위에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고 , 논바닥을 긁을 수 있는 작업날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잡초를 갈아버리는 것이 작동원리 . 원래 못 말리는 기계치에 기계혐오 성향까지 있는 터여서 창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물건을 7 년 만에 다시 꺼내든 것 .

작업속도는 몇 배 빠르고 빽빽한 구역도 거침없이 해치운다 . 반면 벼포기 사이에 낀 풀에는 작업날이 닿지 않아 말끔하지 않은 흠이 있다 . 무엇보다 안 그래도 푹푹 빠지는 뻘밭을 간단찮은 기계를 밀고 나가자면 금세 다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는 힘겨운 작업 .

그렇게 엿새를 보내고 나니 이제야 김매기 , 그 끝이 보인다 . 하루나 이틀 쯤 ? 이제 떠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고단한 김매기 ‘ 전장 ’ 으로 다시 나가 봐야 한다 . /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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