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면 된다 . 호기롭게 시작한 너멍굴 농막짓기 사업은 한 달째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 1 평의 자그마한 방 한 칸을 올리기 위해 38 만 2 천원의 지출과 고군분투를 사용하였다 . 이를 토대로 너멍굴 건설 ( 이하 너멍건설 ) 의 첫 건축물 , 단칸방 건축의 중간보고를 시작한다 .
역시 거대한 무언가는 망상으로부터 시작된다 . 설계는 7 평짜리 거대한 기와집이었다 . 그러나 기둥으로 쓸 나무 1 개를 나르면서 결정을 번복한 너멍건설 , 1 인 기업의 노동력을 감안할 때 7 평을 한 번에 지으면 우리 기업의 유일한 노동자가 죽겠다 싶었다 .
그렇게 너멍건설은 평수를 1 평으로 줄이고 , 건축자재를 가볍고 잘 썩는 자재들로 바꾼다 . 그러나 탁상공론을 주특기로 하는 너멍건설 대표 진씨는 허황된 건축공법과 자본력의 한계로 설계사와 감리사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 너멍건설이 새롭게 임명한 설계사는 한우를 키우는 고산의 조르바였다 .
그는 길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는데 , 그는 180 이라는 자신의 거대한 신장을 줄자로 사용하였다 . 감리는 옥선이라는 감리사가 맡았다 . 그녀는 새 시대의 이동수단 전기자동차를 타는 율곡리 농민으로 옛 건축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견문을 두루 갖춘 인재였다 .
3 월 2 일 , 기초를 닦고 기둥을 세우기 시작한 너멍건설은 도리목을 올리는 과정에서 용역을 불렀는데 , 봉동에 사는 고씨로 닭갈비를 즐겨먹는 자였다 .
그와 도리목을 올리고 , 다시 홀로 연자를 걸고 , 지붕에 흙을 얹는 도중 너멍건설의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언하며 2 일간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 파업을 무마하기 위해 너멍건설은 노동자 전원에게 2 일간의 휴가를 지급하였고 , 휴가 이후 노동자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
흙을 다 올리고 방수를 위한 공법을 고민하던 중 너멍건설 감리사의 결정적 도움이 있었다 . 감리사는 들깨 심을 자리를 보기위해 너멍굴에서 일하던 중 , 옛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은 사멸된 조선시대 초가집 건축의 생생한 후기를 말해주었다 .
짚푸락 만으로도 비는 절대 새지 않는다는 그녀의 조언과 확신에 찬 눈빛으로 너멍건설은 공사 기한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
감리사의 조언대로 짚푸락을 지붕마감재로 선택하여 지붕의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던 중 면에서 식당을 차린다는 ‘ 모여라 땡땡땡 ’ 노동자들이 너멍굴에 와서 짚푸락을 모아주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
3 월 29 일 , 지붕을 완성한 너멍건설은 방수 시험을 위해 3 월 30 일 비가 내리는 날 지붕아래 앉아 , 가만히 밤을 지새워 보았다 .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 대나무 , 산흙 , 석회 , 짚푸락으로 지어진 지붕은 100% 의 방수를 해냈다 .
설계와 시공 , 감리의 긴밀한 협조와 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이제 구들과 벽만 만들면 너멍건설의 첫 번째 작품은 완성된다 . 누구나 첫 작품은 조악하고 우습기 짝이 없다 .
너멍건설 역시 그 통념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 고산의 뭇사람들은 “ 저것은 정자가 아닌가 ?” 하는 의혹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그래도 건축을 의뢰한 건축주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 건축주는 “ 피땀으로 모은 전 재산이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다 .
앞으로도 너멍건설에 집을 맡길 것이다 .” 라고 말하며 건설사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었다 . / 진남현 (2016 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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