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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6.02.24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上)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6.02.24 15:17 조회 18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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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산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자(小子) -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1 월의 새벽 6 시 . 집을 나선다 .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화산면 라복마을로 향한다 .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다가 산언저리 하늘 끝이 까만색에서 쪽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

화산면 화월리에 있는 소막에서 키우는 소들 앞에 선 일진 씨
화산면 화월리에 있는 소막에서 키우는 소들 앞에 선 일진 씨

이른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일 테다 . 화산면 화월리에 박일진 , 정현순 부부가 일하는 소막이 있다 . 60 마리 정도가 살 수 있는 규모지만 소들 편하게 지내라고 30 마리만 키우고 있다 . 사람 밥 먹기 전 소밥 먼저 챙긴다 .

순한 소들은 낯선 이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김을 내뿜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일한 부부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 매일 반복되는 노동은 그들에게 고요한 명상에 가깝다 . 완주에서 ‘ 박일진 ’ 이라는 이름은 유명한 이름이다 .

현재 완주한우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며 완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농축산업 전문가이다 . 부인 정현순씨 또한 1990 년대 광주 발산교회를 중심으로 빈민탁아를 실천하며 ‘ 우리동네아기둥지 ’ 를 운영해 , 광주 · 전남 지역 탁아소 연대인 광주지역탁아소연합 결성의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다 .

한 시절을 뜨겁게 살아낸 정현순씨는 이제 단순하고 조용한 삶을 즐기고 있는 터라 슬그머니 뒤로 빠지며 박일진씨를 앞세운다 . 이들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의 별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 ‘ 달님 ’ 과 ‘ 소자 ’.

‘ 소자 ’ 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뜻하며 , 더 낮아지기 위해 박일진 (1968 년생 ) 씨 스스로 붙인 별칭이다 . 이 글은 그가 어떤 연유로 이러한 별칭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 그리고 그의 삶이 왜 직함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버텨온 시간으로 설명되어야 하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

월출산 타잔 시절 “ 전남 영암 월출산 중턱 암자에서 태어났어요 . 할머니가 스님은 아니셨지만 중간 경계에 있는 분이셨죠 . 득도를 하셔서 할머니를 따르는 신자들이 많았어요 . 소문에 의하면 할머니가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학이 내려와서 할머니를 날개로 덮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

일종의 설화라고 해야겠죠 . 그런 소문이 마을로 퍼져나갔고 상담할 일 있으면 자문도 구하고 , 아픈 사람 치료도 하고 복도 빌어주시면서 그 자리에 동네 분들이 암자를 지어주셨죠 . 그곳에서 대식구가 살았어요 .

할머니 시봉하는 보살님들 , 큰아버지 식구 여섯 , 우리 식구 여섯 , 거의 스무명 가까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죠 . 저는 그 암자에서 태어나서 10 살까지 살았어요 . 무슨 암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불당에서 놀았던 기억들은 나요 . 숨박꼭질 한다고 부처님 불상 뒤에 숨어있던 기억 .

아무나 못 들어오던 곳이었지만 저에게는 그곳이 놀이터였으니까요 . 저는 어린 시절을 타잔처럼 살았어요 . 산을 엄청 빠르게 탔어요 . 일상이 산을 타는 것이었죠 . 어렸을 때부터 엄마 따라 산타고 나무해오고 그런 것에 너무 익숙했죠 .

월출산이 바위산이라 바위 위를 폴짝폴짝 뛰어서 올라가고 폴짝 뛰어서 내려오는 것이 몸에 배서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 산과 관련해서는 두려움이 거의 없었죠 .” 박일진씨의 할머니는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 마치 마고할매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

이른 아침 어둠속에서 명상하듯 일하고 있는 박일진 정현순 부부
이른 아침 어둠속에서 명상하듯 일하고 있는 박일진 정현순 부부

부유한 사람들이 찾아와 시주를 하면 할머니는 그 돈을 어려운 이들에게 되돌려 주곤 했다 . 9 살 어린아이는 많이 가진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늘 어려운 이를 돕고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 땅을 보며 천천히 걷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자세다 .

그는 태어나서 10 살 때까지 자란 그곳에서 자신의 가치관 , 성향이 갖춰진 것 같다고 말한다 . 뜨거웠던 광주에서 보낸 20 대 시절 열 살이 되던 해 , 부모님과 네 형제는 산 아랫마을로 독립하게 된다 .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암자를 떠났지만 , 그때부터 빈곤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

네 형제 중 장남이었던 박일진 씨는 부모의 바람대로 공부를 곧잘 했으나 , 대학까지 진학하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져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다 . 고 3 겨울방학 무렵 , 돈을 벌기 위해 난생처음 서울로 향했지만 대도시의 삶은 혹독했다 .

결국 한 걸음 물러서 1 년간 재수한 끝에 조선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 “ 하필이면 입학하던 그때가 1987 년이었죠 . 처음에는 공부만 열심히 해서 전액 장학금 받으면서 1 학년을 다녔어요 . 1 학년 2 학기 때부터 학생운동에 걸려든 거지 .

그 당시 총장이 독재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학생들 불만이 쌓여 있었고 , 체육대 학생들을 동원해서 폭력으로 진압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 어떤 계기로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거죠 . 제가 그 당시 1 학년 과대표였는데 선배들이 애들 다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를 하더라고요 .

뭔지도 모르고 나갔는데 엄청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더라고 . 가슴이 뜨거워지죠 . 거기에 내가 맛 들린 거에요 . 각 학과 학년 대표자들이 모여서 농성을 해야 한다는데 ... 어차피 자취방가서 밥해먹기도 귀찮은데 같이 어울려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학교에서 농성을 한 거에요 .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 그저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함께 있는 것이 좋았을 뿐이에요 . 그해 겨울쯤 되니까 다른 학과 선배가 와서 학내 민주화투쟁만 가지고는 안된다 , 군사정권에 저항해야 한다는 거야 ..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마음이 뜨거워 지더라고 .

어찌하다 선배의 꼬임에 빠져서 이 길에 들어선 거죠 . 1988 년 1 월 8 일 새벽 학교 농성장에 자고 있는데 경찰들이 진입해서 우리를 잡으러 왔죠 . 끌려가서 구류 7 일 살고 나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경찰에 끌려갔던 거죠 . 그러고 나왔더니 영웅이 되있더라고요 . 이게 조폭세상이랑 비슷해요 .

조선대 1988년 1.8항쟁 당시 대학본관 건물에서 농성중인 학생들 (조선대 자료사진)
조선대 1988년 1.8항쟁 당시 대학본관 건물에서 농성중인 학생들 (조선대 자료사진)

별 달고 나오면 대접받듯이 .” 스무 살 청년들의 뜨거운 마음은 쉽게 식지 않았다 . 그러나 눈앞을 스쳐 날아다니는 직격탄과 백골단의 살기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 스스로 신조가 ‘ 비겁해지지 말자 ’ 인데 가급적이면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

전경들이 뒤에서 쫓아오면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고 가장 후발대에서 뛰었다 . “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제가 엄청나게 싸움 잘하고 겁도 없는 줄 아는데 저는 정말 겁이 많아요 . 다만 내 장기가 남들보다 달리기가 빨라요 . 제가 월출산 타잔이잖아요 .

그래서 전경들이 바로 뒤에서 쫓아와도 안 잡힐 자신이 있었지 . 이제는 좀 잡히고 싶은데 나를 못 잡더라고 .” 이후 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던 중 전국수배령이 내려졌다 . 전국에서 열세 명이 수배 대상이 되었고 , 그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

약 1 년간 숨어 지내다 1991 년 9 월 , 결국 자진출두했다 . 검사는 징역 7 년을 구형했고 , 법원에서는 징역 3 년을 선고했다 . 이후 김영삼 정권 시절 사면을 받아 복역 2 년 4 개월 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 감옥에서 그가 꿈꾸던 세상과 현실 세상은 괴리가 컸다 .

6 개월 동안 방황하다가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월출산 중턱으로 향했다 . 이 길을 다시 내려오지 않으리라 죽을 결심을 하고 어두운 밤에 산길을 올랐다 . 바위 앞에 섰지만 두려움 뿐이었다 .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 ’ 는 것이었다 .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마음의 병을 마주하고 치유하기 위해 충남 금산에 있는 ‘ 전원살림마을 ’ 을 찾게 된다 . 그곳은 무소유와 영성 수련을 실천하는 공동체였다 . 그곳에서 지금의 부인 ‘ 달님 ’ 을 다시 만나게 된다 .

- 2 월 호에 계속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월출산 전경(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월출산 전경(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현장 사진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上) 사진 1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上) 사진 2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上) 사진 3 화산면 라복마을 박일진 이야기 (上)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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