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석과불식( 碩果不食) 화산 대평마을 박서운 할머니 아흔이라는 말은 묘한 울림이 있다 . 100 을 기준으로 90 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숫자인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90 을 아흔이라고 부르면 그것은 어딘지 아득하고 먼 곳에 있는 느낌이 든다 . 아흔 살이 되면 세상은 어떤 풍경으로 보일까 .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아득하고 먼 시간대 살아가고 계시는 박서운 (98) 할머니를 봄이 끝나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의 첫 날 화산면 대평마을에서 만났다 . “ 내가 태어난 고향은 저기 대아리 저수지 근처 신당마을이여 . 거기서 여기로 시집왔는데 그때가 언제쯤인지 이젠 기억도 안나 .
살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일을 겪었어 . 그런데 그 일들이 언제 일어난 일들인지 무슨 일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 . 아들 둘 딸 셋 뒀는데 월남 파병 가서 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들 일만 또렷하게 생각나 . 다른 일들은 잘 생각이 안나 .” 손지갑에는 꼬깃하게 접은 돈이 들어있다.
증손주들 용돈을 주기도 하고 동네사람들 밥을 사주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스물이 되면 약관 , 서른이 되면 이립 , 마흔이 되면 불혹 그리고 일흔이 되면 고희라고 해서 그 나이 때의 사람들이 갖게 되는 마음가짐과 세상에 대한 태도를 교훈적인 단어로 표현해 놓았다 .
그렇다면 아흔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식의 정의가 가능할까 . 할머니는 옛 일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기억하는 것에 대한 기준과 방식이 달라져서 생기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살아온 날들을 시간대별로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지금 할머니는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젊은 사람들의 시간과는 결이 다른 과거와 미래가 느리고 아득하게 흘러갔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다시 흘러가는 새로운 차원의 시간대를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들 내외와 함께 아득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할머니에게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 최숙씨와 조정림씨가 운영하는 ‘ 에버팜 ’ 이라는 농장이 할머니의 집 근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할머니는 오랜 이웃을 대하듯 그녀들을 대했다고 한다 .
매일같이 농장에 들려 수다를 떨고 호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나눠주고 농사 때에 맞춰 조선아욱 , 맷돌호박 , 검은 옥수수 , 완두콩의 씨앗을 건네주곤 했다 . 할머니 주머니 속에는 늘 사탕이 들어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사처럼 건네는 사탕 최숙씨와 박서운 할머니 “ 숙이가 나한테 무지하게 잘혀 .
할마니 할마니 했사면서 잘혀 . 할머니 자빠지지 말라고 길도 깔아놓고 , 앉아서 쉬어가라고 의자도 놓고 . 숙이가 딱 들러붙어서 날 좋아하나봐 . 그래서 뭐시고 씨가 생기면 갖다 주지 . 먹고 살으라고 . 예전에는 다 씨를 받아서 심고 또 나눠서 심고 그랬지 . 예전에는 모종이 있었간디 .
그런데 요즘은 뭐시든지 사다 써 .” 할머니께서 그녀들에게 씨앗을 나눠주는 이유는 두 가지다 . 예전부터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해야 같이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 생각해보면 농촌공동체가 작동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이웃끼리 씨앗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
씨앗을 나누는 것은 모든 것을 나누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 지금은 각자 시장에 나가 필요한 모종을 돈을 주고 사오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 마을을 만들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어쩌면 할머니의 소박한 씨앗 나눔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
작년 가을 , 호박 따러 밭에 나가다 넘어진 할머니는 다리를 다쳐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고 한다 . 그 일로 지금은 농사일이며 일상생활이 다소 불편한 상황이다 . 덕분에 요즘은 숙씨가 할머니 오며가며 편히 앉아 쉬시라고 만들어 놓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
“ 여기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보는 거지 . 나는 여기가 제일 좋아 . 동네에 학교도 있지 지서도 있지 서울보다 더 좋아 . 전주 딸내 가서도 한두 달 씩 있다 오지만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아 . 내 집 내 고향이 좋지 . 여그가 제일 좋아 .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 . 하도 않고 시키지도 않고 .
이 근방에서는 내가 나이 제일 많이 먹었어 . 나도 자식들 키우느라 욕 봤지 . 지금은 자식들이 돈 줘서 써 . 시방이 세상 좋아 .” 할머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됐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말 속에 슬픔 같은 것은 담겨져 있지 않았다 .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으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된 삶을 할머니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지금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셨다 . 할머니에게 백세 넘어 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는 말은 건네지 못했다 .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루하루 평화롭고 담담한 일상을 살아가고 계신 할머니에게 오래오래라는 말은 와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문득 할머니의 시선이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로 향했다 . “ 저기 새들 봐 . 널러가네 .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 내가 새 밥을 챙겨줘 . 쌀도 주고 보리쌀도 주고 .
고양이 개밥은 안 챙겨도 새 밥은 챙겨 . 새는 불쌍해 . 널러 다니면서 못 먹으니까 . 금방 한 세상 넘어가 . 한 세상 넘어가고 늙고 병들고 아프고 그러면 아무 소용없어 . 나는 한 세상 잘 살았어 . 그래도 아이 키울 때가 재미있었어 . 고물고물 클 때 .
고생스러웠어도 그랬냐 저랬냐 하면서 아기 키우던 때가 좋았어 .” 석과불식 碩果不食 . 씨 과일은 먹지 않고 남겨 놓는다는 말이다 . 할머니에게서 석과불식의 의미를 배운다 .
에버팜 숙씨네에게 채소씨를 나눠주고 하늘을 나느라 먹이를 못 먹는 새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아흔 즈음의 할머니에게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석과불식하며 사는 삶을 다시 배운다 .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할머니의 오래된 산책길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