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향이 좋은 천생 나무꾼 경순씨 - 용진면 황제참나무장작 임경순 장작패서 아궁이에 불 피우던 기억은 없지만 중학교 1 학년 무렵까지는 연탄으로 난방을 했던 기억이 난다 . 연탄불 꺼트리던 날은 차디찬 방바닥보다 부모님의 냉랭한 기운이 더 춥고 차가웠다 .
형편이 좋지 않을 때는 연탄을 낱개로 사다 놓기도 하지만 가을 어느 날 아침저녁 바람이 바뀌기 시작하면 동네 골목마다 연탄 나르는 집들로 시끌벅적 했던 기억이 난다 . 엄마는 창고 옆에 까만 연탄을 가득 쌓아 놓으면 그 순간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
일 년 먹을 양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아랫배가 뽀땃한 기분 . 그날은 고만고만한 골목길 사람들이 부자들처럼 고기 듬뿍 넣어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짭짤한 조기도 구웠겠지 . 도시가스가 생기면서 연탄이나 장작처럼 눈앞에 쌓아놓고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희미해졌다 .
그저 서른 개 들어있는 두루마리 휴지 하나 사다놓았을 때 잠시 느끼는 안도감 정도랄까 . 불현 듯 몇 해 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난다 . 장례 치르고 집을 정리하다가 창고에 가득 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들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
얼마나 오래 됐는지 노랗게 변색되어 먼지가 들러붙어 있었다 .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아무래도 장작이나 연탄을 쌓아 놓을 수 없으니 휴지를 쌓아두고 야금야금 즐거움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
황제참나무장작 가에 입구에 쌓여있는 장작들 일 년 농사 짓 듯 정성스럽게 만든 참나무 장작 그래도 시골 살이 중 쌓아놓았을 때 최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건 역시 장작이다 . 용진 황제참나무장작가게 입구에는 참나무장작이 쌓여 있고 그것이 곧 이 가게의 간판이다 .
일정한 간격으로 보기 좋게 쌓여 있는 장작들을 보며 잠시 넉넉한 기분을 만끽한다 . 주말을 앞두고 오전부터 캠핑용 장작을 사러 오는 사람들 차량이 분주히 오고 간다 . 2017 년부터 이곳에서 장작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임경순 (67 년 ) 씨에게는 가을이 한창 바쁜 계절이다 .
“ 장작 만들어 파는 것도 농사야 , 농사 . 일 년 농사 짓 듯 정성스럽게 해요 . 햇빛에 말려야 상품가치가 있으니까 1 년 정도 자연건조해요 . 농부들이 일 년 동안 키운 농산물 출하할 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것처럼 저도 그래요 .” 덜 마른 장작.
장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 그저 뒷산에 올라가 아무 나무나 베어서 쓰면 되는 것 아니냐며 간단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벌목허가를 받은 이가 벌목 가능한 시기에 베어낸 나무들로 장작을 만든다 .
봄과 여름에는 나무가 자라는 시기라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설사 베어서 장작으로 만든다 해도 수분이 많고 벌레 먹은 곳이 많아 상품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 가을 , 겨울철에 벌목한 나무들이 단단하고 땔감으로 적합하다 . 임경순씨는 참나무만 취급한다 .
밀도가 높고 단단해서 오래 태울 수 있고 타고 만들어진 참숯도 쓸모가 많다 . 진안에서 벌목해온 참나무 통목이 공장 한쪽에 가득 쌓여 있다 . 나무꾼 경순씨. 5 미터 정도의 통목은 엔진톱을 이용해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다 . 큰 나무 다루는 일은 남편 김권태 (67 년 ) 씨의 몫이다 .
적당한 크기의 원통형 나무들을 유압기를 이용해 용도에 따라 잘라낸다 . 원통형을 유지한 절단목은 주로 화목보일러 용으로 쓰인다 . 쪼갬목도 크기가 큰 것들은 난로형으로 쓰이고 가장 잘게 쪼갠 것이 캠핑용으로 쓰인다 .
나무 자를 때 생긴 조각들은 불쏘시개용으로 따로 모아두고 톱밥은 밭 , 축사 , 곤충 키우는 곳으로 보낸다 . 이곳 공장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없다 . “ 저는 나무가 참 좋아요 . 나무 향 맡으며 일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요 .
어찌 보면 무거운 장작 패고 나르는 것이 여자들이 하기에 힘에 부칠 수도 있잖아요 . 그런데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 . 도끼질을 할 때 참나무가 쫙 쪼개지면서 나무향이 팍 나요 .
그때 기분이 참 좋아요 .” 돌고 돌아 완주에 정착하다 임경순씨는 바다건너 제주도 빼곤 안 살아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일을 찾아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 하지만 이상하게 예전의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
힘든 건 될 수 있는 한 잊고 지내자 , 가진 것 없어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 잊어지더란다 . 나무꾼 경순씨에게 당신 인생의 첫 장작에 대해 물었다 . 문경에서 나고 자란 경순씨는 어린 동생들과 뒷산에 올라 소죽 끓이기 위해 땔감을 주우러 다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바쁘니까 여덟 살 때부터 제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 거죠 . 두 살 , 세 살 아래 남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제 손으로 밥해 먹였던 거지 . 한창 개구 질 때잖아요 . 그러니까 맨날 혼나지 .
그 겨울에 동생들 외양간으로 쫓겨나면 나도 나가서 추우니까 서로 끓어 안고 함께 자기도 하고 그랬어요 . 아궁이에 불 떼면 그 앞에 셋이 옹기종이 앉아 있기도 했고 . 엄마가 없으니까 .. 내가 보살폈죠 ,” 인생의 반절을 전라도에서 보내고 있다 .
김제를 시작으로 군산 , 전주를 거쳐 3 년 전에 완주에 정작하게 되었다 . 친정인 경상도 문경에 갔다가도 전라도 톨게이트를 지나오면 내 집에 온 것 마냥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한다 . 완주 화산으로 장작 배달 준비중인 임경순, 김권태 부부. “ 여기 참 좋아요 .
우리 부부에게 완주는 연고가 없는 곳이었어요 . 그런데 왠지 편안하더라고요 . 타지라는 생각도 안 들고 . 희한하게 편안해요 . 처음에 장작장사 시작할 때는 생소한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았죠 . 우리 아저씨가 그 전에는 운송업을 했어요 . 그러다보니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죠 .
잠 못 자고 운전하는 것이 나이 들면 위험하잖아요 . 그래서 정착해보자는 마음에 완주에서 이 일을 시작한 거죠 . 처음 시작하고 일 년은 많이 힘들었어요 . 월세 내기도 힘들었지 . 잘 알려지지 않기도 했고 , 우리가 이 지역에 인맥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장사가 어려웠지 .
그런데 일 년 지나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 집 단골이 늘어나면서 그 분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그랬죠 .” 불멍의 계절이다 . 임경순씨는 장작을 팔고부터 불꽃을 보며 명상에 푹 빠지는 맛을 알게 되었다 . 더불어 고기의 맛도 알게 되었다 .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은근하게 구운 고기를 먹고 부터는 가스 불에 구운 고기는 못 먹게 되었다고 한다 . “ 어쩌면 나는 조용히 작업하는 사람인거 같아요 . 거친 일이지만 나무를 만지고 향을 맡는 게 좋아요 . 나무가 참 고맙죠 .
정이 가고 마음이 가요 .” 나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낀다는 임경순씨는 천생 나무꾼이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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