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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9.08.14

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9.08.14 16:13 조회 1,4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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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근 어르신이 평생 동반자 유유복녀 여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 - 비봉면 평지마을 박태근어르신 오늘 오전에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졌고 오후에는 전례가 없었다는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

평생 동반자 유유복녀 여사와 함께 집 앞에서 (4)
평생 동반자 유유복녀 여사와 함께 집 앞에서 (4)

국제 정세나 정치 환경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요즘 같은 상황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평화롭게 지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까 .

박태근 어르신이 요즘 읽고 있는 책들 비봉면 수선리 평지마을에서 만나게 된 박태근 어르신은 지금도 많은 책을 읽고 계셨다 .

서울에서 오랜 동안 출판사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 대변동 > 과 유발 하라리의 < 호모 데우스 > 를 읽고 계시는 여든 여덟의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 박태근 어르신의 삶은 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었고 그래서 책을 파는 청년이 되었다 .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고 여든 전까지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다 . 지금은 책을 즐기는 노인이 되었다 . 박태근 어르신 태어나는 순간 마을에 큰 불이 났었다고 한다 .

급박한 순간 어르신의 어머니는 진통을 견뎌내며 불이 번지지 않은 개울건너 어느 할머니 집으로 가서 출산을 하셨다고 한다 . 화마로 마을은 전부 불탔고 어르신은 태어났다 . 발가벗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던 아이는 뒤주 속에 가득했던 할아버지가 남긴 책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

전쟁통에 사라져 버린 책들이지만 박태근 어르신의 첫 책들이었을 것이다 . 여행가서 사온 좋은 커피 맛 보라며 직접 내려주시는 어르신 “ 예전에 내가 태어나던 때만 해도 이 동네가 밀양 박씨 집성촌이었어 .

서당 훈장 하시던 할아버지 대에는 제법 잘 사는 집안이었다고 했는데 아버지 대에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 . 5 형제 중에 내가 막내야 . 나는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어 . 화산초등학교 30 회 졸업생이야 .

학교에 보낼 형편이 못되었는데 집안 어르신이 내가 총명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공부시켜야 된다고 11 살 먹어서야 학교에 보내준 거지 . 그때가 왜정시대 때였어 . 그 뒤론 독학을 했어 .

1953 년 4 월 그러니까 6.25 전쟁 중 일 때 입대했는데 , 국어사전하고 영영사전을 사서 군대를 갔어 .” 입대할 때만 해도 우리 아들 죽으러 간다고 다들 울며 떠나보냈지만 운 좋게도 후방에 있는 경남 진해로 배치되고 책을 좋아하던 어르신을 눈여겨 본 선임 장교의 배려 덕택에 영어공부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이때 배워둔 영어실력이 외국어전문 서점과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밑천이 되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 청계천 헌책방 거리 1960년대 “ 제대하고 군대에서 만난 친구를 만나 답십리에서 생선장사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지 .

나중에 성공해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어 . 그래도 내가 책을 참 좋아했어 . 하이네 시를 다 외워버렸으니까 . 아무 직업은 없지만 책을 늘 봤지 . 서울에 고서적만 파는 곳이 있어 . 청계천 6 가 헌책방가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해 . 책을 좋아하니까 노는 날 한번 그 거리를 가봤지 .

근데 가다보니 어떤 친구가 땅에다가 마분지를 깔아놓고 책을 팔고 있더라고 . 책을 보고 있는데 화산초등학교 동창놈인거야 . 이재원이라고 .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 그래서 나도 그때부터 책을 팔기 시작한 거야 . 낮에는 청계천에서 바닥에 책을 깔아놓고 팔고 , 밤이 되면 제일은행 본점으로 갔지 .

밤에도 불을 훤하게 켜놓은 곳이야 . 자전거에 책을 싣고 끌고 가서 파는 거야 . 박스 두 개를 자전거에 싣고 거기에 책을 실으면 사람 탈 자리가 없으니까 끌고 가는 거지 . 밤 10 시까지 책을 팔았지 .

그렇게 한 3 년을 팔았어 .” 일제 강점기가 한창이던 1932 년 , 비봉면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간신히 나온 가난한 소년이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사전 두 권을 들고 전쟁 통에 군대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형이 마련해준 쌀 30 가마니 돈으로 무작정 상경해 청계천 길바닥에서 좌판으로 책을 팔기 시작한 어르신의 책과의 인연은 파란만장하고 애틋했다 .

나란히 놓여 있는 박태근, 유유복녀 부부의 사진과 선그라스 “ 생각해 보니까 도매로 책 떼어다가 파는 것이 많이 남아 봐야 이삼십 프로 남는 건데 그럴 바에는 서점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 . 그 당시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평화시장을 지지은건데 거기에 서점을 열었어 .

밑천이 없으니까 가게 하나를 둘로 나눠서 옆에서 안경점을 하고 나는 외국책을 팔았지 . 우리 가게 이름을 외국서점이라고 지었어 . 평화시장의 많은 서점 중에 외국책을 파는 서점은 우리 서점이 유일했어 . 외국책 파는 서점은 우리 하나인데 와서 보면 쓸만한 책이 많거든 . 없어서 못 팔정도로 .

그때가 1964 년이었어 . 외국서점을 7~8 년 했어 . 하나보니 그거 가지고는 안 될 거 같아서 출판사를 시작했어 . ‘ 한신문화사 ’ 라고 1973 년 6 월에 출판사 등록을 했어 . 서점이랑 출판사 합치면 45 년이야 .

2010 년 3 월까지 하다가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 .” 어르신은 그 바쁜 평화시장 시절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한다 .

한학을 하셨던 할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렵고 불편한 환경이 오히려 성공하고 싶은 간절함을 갖게 하셨고 그것이 지금의 어르신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

물론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어르신을 대신해 지금까지도 전용 운전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유유복녀 할머니의 공도 크지 않았을까 . “ 출판사를 열심히 하되 사회에 기여를 해야겠다 싶어서 각 학교에 한신문화사 책을 매년 두 개 학교씩 기증을 하기로 했어 .

75 년부터 책 기증하고 76 년부터 장학금을 줬지 . 내 고향 화산초 , 비봉초등학교에도 큰돈은 아니지만 76 년도부터 민중영한사전 , 국어사전 , 영영사전 , 옥편 6 가지를 3 명씩 책으로 장학금을 줬는데 그 뒤로 책이 그렇게 필요 없어지니까 장학금 30 만원씩을 증여했지 .

지금은 백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어 . 비봉초등학교 . 화산초등학교 , 화산중학교 등 5 군데 주다가 지금은 줄였지 .” 박태근 어르신은 꽃을 좋아해 집 곳곳에 꽃을 기른다.

고단했지만 보람도 있었던 서울생활을 마치고 고향 마을 산자락에 자리 잡은 어르신의 집과 마당에선 멀리 운장산과 안수산의 산마루들이 보인다 .

이야기 말미에는 “ 한 눈 팔지 말고 무엇이든지 한 10 년만 정진하면 길이 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 ” 는 어르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훈육도 들었지만 어르신은 여전히 새로운 책을 읽으며 세상을 공부하고 계셨다 .

나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 총 , 균 , 쇠 > 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여든 셋 , 그 책을 읽고 계시는 어르신도 여든 여덟이니 두 분은 아직도 세상을 읽고 쓰고 연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국제 정세와 정치 환경이 시시각각 변하고 온갖 사회문제들도 산재해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 어르신께서도 더 건강하게 더 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살아가시길 소망한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여든 여덟에 제러드 다이아몬드를 읽는다는 것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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