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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0.04.13

상관 토박이들의 한동네 사랑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0.04.13 10:11 조회 1,38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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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키워낸 한동네 사랑 - 내정마을 서정숙 , 표길운씨 부부     십년 가까이 완주군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상관면 소재지를 제대로 둘러본 기억은 없다 .

몇 해 전 새로 지어진 주민센터에서 주민시네마스쿨을 진행 하느라고 전주와 상관을 오간 기억은 있지만 주민센터는 전주방향 상관면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서 소재지 안쪽 골목골목을 다녀보진 못했다 . 상관면 소재지는 큰 길들에 둘러싸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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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산비탈로는 새로 뚫린 완주 - 순천간 고속도로가 있고 그 아래에는 여수로 가는 전라선 철도가 있고 소재지 서쪽으로는 남원으로 가는 17 번 국도가 있고 한일장신대와 고덕산 사이로는 모악산쪽으로 가는 21 번 국도가 휘어나간다 .

큰 길들에 좁고 길게 놓여 있는 소재지는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 서정숙씨 (57 세 ) 와 표길운씨 (61 세 ) 가 운영하는 ‘ 표순대 ’ 도 어쩌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코로나 19 바이러스 탓에 집에만 있다가 모처럼 드라이브 삼아 상관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는 고가도로 중간쯤에서 소재지 작은 골목길 끝 삼거리에 자리 잡은 ‘ 표순대 ’ 의 파란 구름 간판이 봄 햇살을 가득 받으며 내 눈에 들어왔다 .

사장님 내외는 상관면 내정마을에서 나고 자라 한동네 결혼으로 여태껏 살아온 이곳 토박이들이다 . “ 우리 친정은 칠남매고 시댁은 육남매에요 . 온 집안사람이 한 동네 사람이니까 서로 다 알지 . 우리 남편 형제간들은 다 한 동네 결혼했어요 . 아들 셋 있는 집인데 다 한동네 결혼했지요 .

우리 친정은 딸 셋에 아들 넷 . 내가 둘째인데 위로 오빠가 하나 있지요 . 친정집이 나 스물두 살 때 고쳐서 새로 지었어요 . 이사 하는 날 그 양반이 만나자고 그러더라고요 .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찾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

집들이 하는 날이었으니까 집에 손님도 많았었는데 ‘ 정숙아 정숙아 ’ 찾으러 다니고 나는 그 양반이랑 옥상에 있었지요 . 밤에 별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

그날 그렇게 만나서 이날 여태껏 이렇게 살아요 .” 식구들 밥해먹이던 아이는 첫 월급으로 라면 한 박스를 샀다 덜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참 아련한 사랑이야기지만 서정숙씨는 산골마을 큰 딸로 태어나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

농사와 채소장사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솔가지를 긁어서 땔감도 마련해야 했으니 친구들과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 “ 동생들이 많다 보니까 집에서 동생들을 봤어요 . 어쩌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았어요 . 학교를 오랜만에 오니까 .

그리고 칠판에 써져있는 것을 내가 뭔 자인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 아무것도 모르지 . 2 학년 때 학교 안 간다고 했어 . 그게 마음에 좀 남아요 . 그때 나는 어렸어요 .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살림하고 애들 돌보고 그런 거야 . 김치도 담고 그랬어 .

학독에 고추 갈아서 김치를 담으면 이틀도 못 가서 빡 나버렸어 . 식구들이 많으니까 . 여름에는 날이면 날마다 김치를 담았어요 . 냉장고가 없으니까 시암에다가 담가놓고 먹고 그랬지요 .”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엔 상관에 한지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

전주가 한지로 유명했고 전주와 가깝고 물이 좋았던 상관면에 한지공장이 많이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서정숙씨는 열여섯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육년 동안 편백숲 근처 한지공장에서 일을 했다 . 남자들이 종이 뜨는 일을 하고 여자들은 철판에 종이 말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

“ 열여섯 살에 한지공장 다닌 게 내 첫 사회생활이었어요 . 그때부터 밥 차리는 건 내 동생이 물려받았어요 . 그래도 내가 일해서 돈 벌 때가 좋았어요 . 돈 벌어서 제일 처음으로 뭘 했냐면 라면 한 박스를 사서 동생들이랑 튀겨먹고 삶아먹고 별걸 다했어요 . 그때가 가끔 생각나요 .

그때는 라면도 귀했어요 . 첫 월급이 한 육만원이었어요 . 처음엔 종이를 띄어서 차곡차곡 놓는 일을 했어요 . 내가 좀 연차가 될 때는 더 벌었지요 . 내가 고참이지만 나보다 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었어요 . 내가 제일 어렸어요 .

그래도 그때가 황금기였달까 돈 벌어서 저축하던 때였으니까요 .” - 직접 농사지은 채소들로 맛깔스런 반찬을 만들어 낸다. 7 년 전 시작한 순대국밥집 지금 가게 ‘ 표순대 ’ 는 칠년 전에 문을 열었다 . 그동안 남편은 양봉 , 건설 쪽 일을 했고 서정숙씨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농사를 지었다 .

순대집을 하기로 마음먹고 둘째딸과 순대로 유명한 식당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 어렸을 때부터 밥해 먹었던 가락이 있어서 음식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았다 . 그래도 ‘ 표순대 ’ 가 최고로 자랑하는 것은 식재료 대부분을 집 앞 밭에서 나오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

“ 첫째는 서른네 살 , 둘째는 스물아홉 살 . 막내는 스물네 살 삼남매를 뒀어요 . 둘째랑 순대맛 연구하러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 순대로 유명한 곳 있다고 하면 가서 먹어보고 그랬어요 . 장사하면서도 농사도 열심히 지어요 .

감자 심고 , 가을 배추도 심고 우리 식당 식재료에 쓰이는 것 다 농사짓고 살아요 . 밭이 집 근처에 있어서 참 좋아요 . 남편이 뒤에서 식재료를 조달해주면 나는 가마솥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요 . 남편이 그래도 참 자상해요 .

시집갔을 때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혼자 계셨는데 동네 어르신들이니까 다 알잖아요 . 어렸을 때 기억나요 . 생전에 시아버지가 그때는 시아버지가 아니었지 . 그냥 동네 어르신이었지 . 그 양반이 나 보면 나 어렸을 때 ‘ 우리 며느리나 하게 ’ 그랬던 것을 지금도 안 잊어버려요 .

냇가에 있는데 나 보면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지 .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진짜 며느리가 되었어요 .” 상관면 소재지 골목길 삼거리에 자리 잡은 ‘ 표순대 ’ 의 예쁜 간판과 파란 구름은 2016 년 완주군과 전북도립미술관 협업으로 진행된 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

어느 날 길을 가다 상관면 소재지에 들리시거든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꼭 ‘ 표순대 ’ 에 들러 따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보시길 권한다 . 순대국밥 , 뼈다귀탕 , 김치찌개가 메뉴판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식당 안에는 근처 공사장 인부들이 연신 뜨거운 국밥을 들이키고 있었다 .

서정숙씨는 주로 주방 안에서 말없이 일을 했고 표길운씨는 테이블과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

날씨 이야기 , 음식 이야기 , 세상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고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고 어느 날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여태껏 살아왔으니 그 끝없는 이야기처럼 두 내외의 삶과 사랑도 끝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

현장 사진

상관 토박이들의 한동네 사랑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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