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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5.08.29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5.08.29 11:44 조회 48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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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몇 해 전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김영옥 선생님이 진행하신 ‘ 노년되기 : 나이 듦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 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

남편(故배병운)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들고(3)
남편(故배병운)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들고(3)

시골의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이지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생애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때였다 . 나이 듦은 전환과 이동의 과정이다 . 늙어가는 것은 수직적으로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삶의 지평을 따라 수평적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 가는 여정일 수 있다 .

그동안 만난 다양한 어르신들 삶의 모습을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 두고 있다 . 그들이 그저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이 우리에게는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자 나침반이다 . 비봉면 원소농마을 초입의 선명한 초록색 대문집이 김정희 (1943 년 생 ) 할머니의 집이다 .

주황색 나리꽃과 노란색 루드베키아꽃이 마당 한가득 피어있다 . 그 사이에 빛나는 은빛 머리의 정희 할머니가 서 계신다 . 앞마당에는 좋아하는 꽃을 심고 뒷마당에는 즐겨 먹는 작물을 심어놓는다 하셨다 .

2007 년 원소농마을로 귀촌하기 전까지 평생을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 와서 흙을 만지려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 농사초보에서 마을이장이 되기까지 “ 내가 손이 진짜 예뻤는데 요령 없이 힘으로 풀을 뽑으니 , 관절이 굽고 손이 금방 변하더라고요 . 이곳은 애들 아버지 고향이었어요 .

IMF 때 미국으로 가서 12 년 동안 살다가 2006 년 11 월에 한국 들어왔는데 남편이 갑자기 아팠죠 . 그때 병원에 보름 동안 입원하면서 서울보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권해서 2007 년 5 월 1 일 비봉으로 온 거에요 .

참 다이나믹하게 산 거 같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 김정희 할머니는 2015 년부터 3 년간 원소농마을 이장을 지냈으며 , 현재는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 그 시절 , 외지인으로서 특히 여성 노인으로서 이장 직책을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그 비결을 묻자 , 일단은 자신이 이 마을의 구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 들었다는 것이다 .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 중앙초등학교 , 전남 여중 , 전남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대학교 졸업 후 교사생활을 했으니 그 시절에 태어난 여성으로서 최고의 교육과정을 밟아 온 셈이다 .

하지만 농촌에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 그 시절 원소농마을 사람들이 정희 할머니에게는 전부 선생님이었다 . 모르는 것이 있으면 쫓아다니며 물어보고 주민들의 도움으로 텃밭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 그 시절을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한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한다 .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라고 한다 . “ 제가 광주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의협심이 있어요 . 제가 1970~80 년 무렵 강남 살 때 아파트 회의하는데 잘 못 된 거를 못 봐요 . 참지 않고 말하죠 .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부녀회장을 시키더라고요 .

1960년 후반 가족들과 함께 가운데 흰모자 김정희
1960년 후반 가족들과 함께 가운데 흰모자 김정희

그 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이 아파트 부녀회장 통해서 선거운동 하는데 저는 그거 가만히 두고 안 보죠 . 딱 거절했죠 . 부녀회장은 맡은 바 일을 하면 되지 정치하는 남자들 밑에서 보좌하는 일은 못하겠더라고요 . 앞에 나서서 주민들의 어려운 사항을 대신 전달하고 해결하는 일을 했던 거죠 .

그런 경험이 있으니 이장일도 겁나지 않았어요 . 모르는 농촌일은 주민들에게 물어보면서 했죠 .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사람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 공부에요 .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제 선생님이에요 . 그때 획기적이었던 것은 모두에게 이름이 탄생한 거에요 . 마을 회의할 때 저는 이름으로 다 불러요 .

누구 엄마 , 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렀어요 .” 미련 없이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광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인천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남편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평탄하게 살아 가던 중 IMF 를 겪으며 무역회사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홀연히 떠난 정희 할머니는 그 시절을 겪지 못했다면 비봉면에서의 새로운 삶도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한다 .

“ 제가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탄하게 살았지만 제 스스로가 우월한 건 아니거든요 . 나름 최고로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미국 가 보니 최고가 아니지 . 배울 만큼 배우고 갖출 만큼 갖추고 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거지 .

말도 할 줄 모르지 하나부터 열까지 뒤처지는 걸 경험했어요 . 낮아지지 않으면 못 살아요 . 그런 와중에 믿음이 생기더라고 . 이 세상에는 검은 피부도 있고 하얀 피부도 있고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말 어려워요 . 인격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죠 .

그건 기본이에요 . 그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 미국 살 때 일한 만큼 벌고 떳떳하게 살았죠 . 평탄하게만 살아왔더라면 이 곳에 내려오지 못 했을 거에요 . 식당 , 세탁소 , 수영장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그 경험이 참 좋았어요 .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김정희 할머니의 서재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김정희 할머니의 서재

12 년 살면서 일을 했으니 영어도 많이 늘었죠 .” 누구나 영화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바라지만 , 정작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크고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조용히 흐르는 평범한 하루들 아닐까 . “ 누구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싶어 하죠 . 저는 평범하게 살았어요 .

그래도 내가 살았던 삶은 그 자리에서 순간순간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항상 미련이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하고 살았어요 .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 없잖아요 . 이 시간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

저는 제 또래 사람들에게 작은 돈 아끼지 말라고 해요 . 그럼 돈은 언제 써요 ? 그래서 나는 평생 모은 돈 쓰고 살았어요 . 그때그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요 . 누가 20 대 30 대를 준다고 해도 나는 싫어요 .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요 . 지금이 좋아요 .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좋아요 .” 김정희 할머니의 정갈한 서재에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 , 고 ( 故 ) 배병윤 선생의 흔적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볕이 잘 드는 책상 , 그곳에서 글을 쓰던 남편의 자리에 앉아 김정희 할머니도 조용히 글을 쓴다 .

이른 새벽마다 성경책을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필사한 원고가 한가득 쌓여 있다 . 한 글자씩 세기며 더불어 사는 삶 , 사랑에 대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다 . 그 서재에서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무언가를 한참 찾으신다 . 묵직한 가방을 건네셔서 열어보니 카메라가 들어있었다 .

“ 남편이 쓰던 건데 나는 필요 없으니 대신 사용해 주세요 . 좋은 세상이잖아요 . 이 카메라 들고 온 세상을 누리고 다니세요 .” / 글 · 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이른 새벽마다 성경책을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필사한 원고들
이른 새벽마다 성경책을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필사한 원고들

현장 사진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사진 1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사진 2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사진 3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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