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 비봉면 원소농마을 김정희 할머니 이야기 몇 해 전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김영옥 선생님이 진행하신 ‘ 노년되기 : 나이 듦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 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
시골의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젊은이지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생애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때였다 . 나이 듦은 전환과 이동의 과정이다 . 늙어가는 것은 수직적으로 하강하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삶의 지평을 따라 수평적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 가는 여정일 수 있다 .
그동안 만난 다양한 어르신들 삶의 모습을 차곡차곡 내 안에 쌓아 두고 있다 . 그들이 그저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이 우리에게는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자 나침반이다 . 비봉면 원소농마을 초입의 선명한 초록색 대문집이 김정희 (1943 년 생 ) 할머니의 집이다 .
주황색 나리꽃과 노란색 루드베키아꽃이 마당 한가득 피어있다 . 그 사이에 빛나는 은빛 머리의 정희 할머니가 서 계신다 . 앞마당에는 좋아하는 꽃을 심고 뒷마당에는 즐겨 먹는 작물을 심어놓는다 하셨다 .
2007 년 원소농마을로 귀촌하기 전까지 평생을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 와서 흙을 만지려니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 농사초보에서 마을이장이 되기까지 “ 내가 손이 진짜 예뻤는데 요령 없이 힘으로 풀을 뽑으니 , 관절이 굽고 손이 금방 변하더라고요 . 이곳은 애들 아버지 고향이었어요 .
IMF 때 미국으로 가서 12 년 동안 살다가 2006 년 11 월에 한국 들어왔는데 남편이 갑자기 아팠죠 . 그때 병원에 보름 동안 입원하면서 서울보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권해서 2007 년 5 월 1 일 비봉으로 온 거에요 .
참 다이나믹하게 산 거 같지만 저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 김정희 할머니는 2015 년부터 3 년간 원소농마을 이장을 지냈으며 , 현재는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 그 시절 , 외지인으로서 특히 여성 노인으로서 이장 직책을 수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그 비결을 묻자 , 일단은 자신이 이 마을의 구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 들었다는 것이다 .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 중앙초등학교 , 전남 여중 , 전남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대학교 졸업 후 교사생활을 했으니 그 시절에 태어난 여성으로서 최고의 교육과정을 밟아 온 셈이다 .
하지만 농촌에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 그 시절 원소농마을 사람들이 정희 할머니에게는 전부 선생님이었다 . 모르는 것이 있으면 쫓아다니며 물어보고 주민들의 도움으로 텃밭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 그 시절을 겪고 나니 자연스럽게 한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한다 .
그리고 또 하나의 비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라고 한다 . “ 제가 광주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의협심이 있어요 . 제가 1970~80 년 무렵 강남 살 때 아파트 회의하는데 잘 못 된 거를 못 봐요 . 참지 않고 말하죠 .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부녀회장을 시키더라고요 .
그 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이 아파트 부녀회장 통해서 선거운동 하는데 저는 그거 가만히 두고 안 보죠 . 딱 거절했죠 . 부녀회장은 맡은 바 일을 하면 되지 정치하는 남자들 밑에서 보좌하는 일은 못하겠더라고요 . 앞에 나서서 주민들의 어려운 사항을 대신 전달하고 해결하는 일을 했던 거죠 .
그런 경험이 있으니 이장일도 겁나지 않았어요 . 모르는 농촌일은 주민들에게 물어보면서 했죠 .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사람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이 공부에요 .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제 선생님이에요 . 그때 획기적이었던 것은 모두에게 이름이 탄생한 거에요 . 마을 회의할 때 저는 이름으로 다 불러요 .
누구 엄마 , 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불렀어요 .” 미련 없이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광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인천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남편을 만나 아들 둘을 낳고 평탄하게 살아 가던 중 IMF 를 겪으며 무역회사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홀연히 떠난 정희 할머니는 그 시절을 겪지 못했다면 비봉면에서의 새로운 삶도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한다 .
“ 제가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탄하게 살았지만 제 스스로가 우월한 건 아니거든요 . 나름 최고로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미국 가 보니 최고가 아니지 . 배울 만큼 배우고 갖출 만큼 갖추고 살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거지 .
말도 할 줄 모르지 하나부터 열까지 뒤처지는 걸 경험했어요 . 낮아지지 않으면 못 살아요 . 그런 와중에 믿음이 생기더라고 . 이 세상에는 검은 피부도 있고 하얀 피부도 있고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정말 어려워요 . 인격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죠 .
그건 기본이에요 . 그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 미국 살 때 일한 만큼 벌고 떳떳하게 살았죠 . 평탄하게만 살아왔더라면 이 곳에 내려오지 못 했을 거에요 . 식당 , 세탁소 , 수영장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그 경험이 참 좋았어요 .
12 년 살면서 일을 했으니 영어도 많이 늘었죠 .” 누구나 영화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바라지만 , 정작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크고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조용히 흐르는 평범한 하루들 아닐까 . “ 누구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싶어 하죠 . 저는 평범하게 살았어요 .
그래도 내가 살았던 삶은 그 자리에서 순간순간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서 항상 미련이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하고 살았어요 .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 ,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 없잖아요 . 이 시간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요 .
저는 제 또래 사람들에게 작은 돈 아끼지 말라고 해요 . 그럼 돈은 언제 써요 ? 그래서 나는 평생 모은 돈 쓰고 살았어요 . 그때그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요 . 누가 20 대 30 대를 준다고 해도 나는 싫어요 . 그때로 돌아가기 싫어요 . 지금이 좋아요 .
하루를 살아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좋아요 .” 김정희 할머니의 정갈한 서재에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 , 고 ( 故 ) 배병윤 선생의 흔적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볕이 잘 드는 책상 , 그곳에서 글을 쓰던 남편의 자리에 앉아 김정희 할머니도 조용히 글을 쓴다 .
이른 새벽마다 성경책을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필사한 원고가 한가득 쌓여 있다 . 한 글자씩 세기며 더불어 사는 삶 , 사랑에 대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다 . 그 서재에서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무언가를 한참 찾으신다 . 묵직한 가방을 건네셔서 열어보니 카메라가 들어있었다 .
“ 남편이 쓰던 건데 나는 필요 없으니 대신 사용해 주세요 . 좋은 세상이잖아요 . 이 카메라 들고 온 세상을 누리고 다니세요 .” / 글 · 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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