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없는 로드카페 주인 이경자 新綠 의 정원이 찬란한 위봉카페로 오세요 - 천원으로 만날 수 있는 커피와 풍경과 그리운 사람들 - 위봉폭포 앞 위봉카페에서 손님들이 앉아 쉬고 있다. 오월에서 유월로 넘어가는 지금 계절의 신록은 그 청량한 색깔이며 풍부한 질감으로 아름답다 .
완주에서는 차로 십여 분이면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신록을 만날 수 있다 . 북쪽으로는 천등산과 대둔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만덕산과 모악산이 있다 . 그리고 동쪽으로는 그 이름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산들이 연봉으로 펼쳐져 있다 .
나는 모든 산들의 신록을 사랑하지만 이 계절에 특별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신록예찬 드라이브 코스가 한 군데 있다 . 고산에서 출발해 대아저수지를 지나 수목원 갈림길에서 동상면 소재지 방향으로 우회전 , 그리고 단풍나무 가로수 터널을 지나 오른편 호수의 폭이 좁아질 무렵 삼거리가 나온다 .
여기서 위봉사 방향으로 우회전 하고 십여 분을 더 달려 위봉산성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양 옆으로 펼쳐지고 그 산들의 풍경이 가장 절정에 이르는 길 가에 위봉폭포와 위봉카페가 있다 . 위봉카페 주인장 이경자 씨가 커피를 제조하고 있다.
“ 처음엔 동네 청년들이 먼저 하고 있었는데 형수가 해보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23 년 됐어 . 트럭 한 대는 사놨지만 엄두가 안 나서 처음 15 일은 안 나와 버렸어 . 차 펴놓고 장사할 일 생각하니까 창피하기도 하고 심란했지 . 23 년 전에 3 월 15 일부터 장사를 시작했을 거야 .
얘들은 넷이나 되지 . 먹고는 살아야 되지 , 가진 것은 없지 . 그런 게 아줌마 , 엄마의 힘이지 . 암튼 심란하기는 했어도 트럭 세워놓고 탁 펼치니까 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네 . 사람이 계속 왔어 . 내가 사람들을 좋아해 . 좋아하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
여기는 짜증내는 사람들 없어 . 내가 23 년 장사하면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 .
그러니까 여기 오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야 .” 온갖 세상사람 다 만나는 곳 이경자씨가 운영하는 위봉카페는 길 가 트럭 위에 펼쳐진 카페로 경치 좋은 국도변이나 산세 좋은 길 가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 말하자면 길 다방인 셈이다 . 전주가 고향이지만 30 여년 전에 소양으로 이주해 왔다 .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엄두도 나지 않았던 이 일을 23 년 동안 쉼 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 나는 주로 들어주는 사람이야 . 손님들이 오면 이런 저런 이야기 하고 나는 ‘ 그러지 그러지 ’ 하며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사람이지 .
이름 물을 것도 없고 얼굴만 아는 거지 . 길에서 만난 사람들 커피 한잔 마시며 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거야 . 산 좋아하고 자연 좋아하는 사람들 치고 나쁜 사람들 없어 . 그러니 이 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지 . 여기 산골짜기에서 세상사람 다 만나고 온갖 세상이야기 다 들어 .
서울 , 강원도 , 부산 , 대구에서 다 와 . 이 폭포가 있으니까 .”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드나들었을까 .
위봉폭포에 보러 왔다가 들른 사람들 , 고갯길에 쉬어가느라 잠시 머문 사람들 , 지나가다 풍경에 홀려 찾아든 사람들 , 참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갔고 위봉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
23 년이 지나는 동안 적지 않은 단골들이 있었고 지금도 생각나는 특별한 단골 어르신들도 있었다고 한다 . “ 옛날에는 할아버지들이 진짜 많이 다니셨어 . 나한테 참 잘해 주셨는데 거의 다 돌아가셨어 . 같이 오던 친구 분들이 와서 떠났어 하면 알고 또 누가 떠났어 하면 알고 그러지 .
생각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네 . 작년부터 안보이시더라고 . 근데 그 아들이 찾아와서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시더라고 . 또 봉동에서 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은 오토바이 타고 여기를 참 많이도 오셨어 .
한참 안 오실 땐 이제 가셨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으면 참 고맙게도 자녀분들이 우리 카페까지 찾아와서 돌아가셨다는 걸 알려주더라고 . 봉동 할아버지는 진짜 여기를 좋아하셨거든 . 파도 뽑아다 주고 , 콩도 따다 주고 . 근데 그 아들이 여기 와서는 웃기느라고 그려 .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기셨는데 , 너는 커피를 마시려면 꼭 폭포 가서 마셔라 . 라고 했다고 . 내가 그 소리 듣고 어찌나 웃었는지 몰라 .” 변하는 세월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 언제부터 그렇게 불리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주군 동산면은 전국 8 대 오지 중의 한 곳이었다고 한다 .
댐이 만들어지고 도로와 다리가 제대로 놓아지기 전까지는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던 산골 오지의 길 가에서 이경자씨는 오랜 세월 동안 길이 만들어지고 다리가 놓아지고 터널이 뚫리는 모습을 실감나게 기억하고 있었다 . “23 년 전에도 도로가 있긴 했는데 이 팔각정까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어 .
팔각정 넘어 동상면 방향으로는 비포장 도로였어 . 그리고 그때는 동산면으로 넘어가는 다리도 없었어 . 십 몇년 전에 다리 ( 음수교 ) 가 개통되어서 이 도로가 쭉 연결된 거지 . 여기서 동산면사무소 가려면 다시 화심으로 나가서 돌아가야 했어 . 다리가 없을 때는 여기가 종점 같은 곳이었지 .
내가 여기 길가에서 장사하면서 참 많은 게 변했고 그걸 다 지켜봤네 . 장사하면서 여기 터널 생겼지 . 원래 길이 있긴 했는데 여기서 낙석사고가 났었어 . 그래서 인공터널을 만든 거지 . 참 여기 공사 많이 했네 .
그런 난리통에도 꼬박꼬박 여기서 장사를 했어 .” 처음 장사할 때는 맥심커피만 팔았지만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메뉴도 많이 늘어났다 . 커피값 700 원을 받았지만 거스름돈 귀찮다고 천원으로 올리자는 손님들 제안으로 천원으로 올리고 나선 지금까지도 계속 천원을 고집하고 계신다 .
앞으로도 올릴 생각이 없다고 하신다 .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위봉폭포를 바라보는 동안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위봉카페로 들어섰다 . 십년 넘게 찾아오시는 단골 할아버지다 . 사장님이 익숙하게 커피 , 설탕 , 프림을 알맞게 조제해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래된 차는 사장님의 트럭 카페 옆에 선다 .
모든 것이 오랫동안 똑같은 일을 반복했던 것처럼 익숙하다 . 커피잔을 들고 멈춰선 차로 다가가 열린 창문 사이로 건넨다 . 여든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차 안에 앉아 달큰한 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 대를 피우신다 . 그 담배 한 대와 커피 한 잔을 마실 때까지의 시간 .
그 시간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황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 길 위의 위봉카페 이경자 사장님은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잠깐 동안이지만 커피색처럼 아름다운 황금의 시간을 조제하는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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