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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6.12.06

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두부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6.12.06 16:21 조회 1,7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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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 두부 화산 손두부 우계자 할머니 콩을 하루 정도 물에 불려 적당히 삶은 다음 잘 뭉개서 비지를 걸러내고 남은 콩물에 약간의 간수를 섞어주면 단백질이 응고 되서 순두부가 되고 그것을 잘 눌러서 물기를 빼주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두부가 된다 . 콩 , 물 , 간수 .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두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이처럼 간단한 레시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지간해선 두부를 만들어 먹지 않는다 . 세상엔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 많다 . 두부 만드는 것도 그 중 하나다 . “ 여름철에는 두부 만들기 진짜 힘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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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삶는데 열기도 엄청나고 만들어 놓은 두부가 빨리 상하기도 하고 .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전날 불려놓은 콩을 갈아서 솥에 삶은 다음에 쌀자루에 넣고 짜 . 그 전에는 쌀자루가 없었어 . 그래서 월남전 참전 했던 사람들이 거기서 쓰는 모기장을 가지고 들어왔어 .

그 모기장을 사다가 자루로 만들어서 그걸로 짰었지 . 두부 한 판 ( 스물 네모 ) 만들고 찌개 끓일 순두부 만들어 놓고 그리고 점심장사 준비하지 .” 살기 위해 시작한 두부 화산 순두부집 우계자 할머니 (77 세 ) 는 매일같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두부 만드는 일을 46 년째 하고 있다 .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살다 화산 사는 친구 따라 잠시 내려왔다 이곳에서 가정을 이뤘다고 한다 . “ 여기 완전 깡촌이었어 . 이 앞에 도로가 있었간디 . 도시에서 살다가 어쩌다 여기로 시집을 왔는가 울기도 퍽 울었어 .

광에 가도 아무 것도 없어 , 보리쌀도 없고 쌀도 없고 .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나무 해다가 팔고 넘의 땅 빌려다가 농사 지어 먹고 , 농사도 어디 지어 봤간디 ? 여기와서 징그럽게 지었지 . 도망가려고도 했었지 .

22 살에 시집와서 23 살에 첫 애를 낳았는데 아기를 낳으니까 불쌍해서 못 나가겠더라고 . 우리 큰아들이 지금 쉰 네 살인데 , 그 아들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46 년 됐네 . 불을 뗄라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데 나무가 어디 있간디 .

떨어진 솔가지를 주어다가 쏘시게 해서 불 지피고 가마솥에 끓여서 두부를 만들었지 . 만들어다가 화산면 주막에다가 다 내다 팔았어 .

머리에 두부를 이고 지고 등에는 아이 업고는 십리 길을 걸어 다니면서 두부를 팔았어 .” 46 년 전 그 부엌에서 지금까지 할머니가 살아낸 46 년을 이곳에 다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다만 그 고생과 곡절을 짐작만 할 뿐이다 .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일은 두부장사 뿐만이 아니다 .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기도 했고 남의 땅 부쳐서 농사도 지었고 논산에서 과일을 떼어다 팔기도 했고 몸이 아파 두부를 만들기 어려울 땐 찐빵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한다 . 간식거리도 변변치 않던 시절 우계자 할머니가 만들어 내는 별모양 찐빵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

따로 가게를 내고 판매를 한 것도 아니었다 . 아궁이 불 떼는 부엌에서 방금 만든 찐빵을 소쿠리에 담아 놓으면 지나가는 학생들 청년들이 찐빵을 사기 위해 집 부엌 뒷길로 길게 줄을 섰다고 한다 . 찐빵을 기다리는 사이 동네 처녀총각들이 찐빵을 사먹으며 눈 맞추던 연애장소이기도 했던 그 부엌 .

46 년이 지난 지금 , 부엌은 그 모습 그대로다 . 우계자 할머니의 둘째 딸 국경순씨는 7 년째 전주에서 화산을 버스로 오가며 어머니의 일손을 돕고 있다 .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부엌은 뛰어 놀 만큼 컸다고 한다 .

마흔이 훌쩍 넘은 딸과 여든이 되어가는 어머니가 들어가 앉은 부엌은 그 사이 많이 늙었다 . 46 년 전 그대로 아직도 그 아궁이 가마솥에 콩을 삶고 콩 물을 끓인다 . 두부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듯이 할머니의 인생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

7년째 전주와 화산을 오가며 일손을 돕고 있는 둘째 딸 국경순씨. “ 어떤 사람은 나보고 지독하다고 그러더라구 . 서울사람이 와서 여기서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살아낸다고 . 참 대간하게 산다고 . 두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살아졌지 .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했는데 어느 순간에는 재미있더라고 . 매일 같이 만드는 두부지만 볼 때마다 신기해 . 콩이 어떻게 이렇게 두부로 만들어 지는지 참 신기해 . 힘드니까 자식들이 이제 두부만 하라 그래 . 근데 손님들이 찾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

그래서 찌개백반을 계속 파는 거지 . 내가 억척스러웠어 . 화산면민의 날에도 씨름대회랑 팔씨름대회도 나가고 2 등도 하고 그랬어 . 머스마라고 할 정도로 힘도 셌고 억척스러웠어 .

부자는 못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고 있고 힘들어도 내 하루 일당은 버니까 괜찮아 .” 정직한 맛 찾아오는 사람들 할머니의 두부집엔 단골손님들이 많다 . 화산 순두부집 간판에는 그 흔한 원조라는 글씨도 없고 메뉴도 단출하지만 손님들은 다 안다 .

농사지은 콩으로 가마솥에 불을 때서 할머니가 직접 손으로 두부를 만들고 그 두부로 찌개를 내오고 , 그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을 . 누구에게나 인생의 레시피는 있다 . 그것은 쉐프들이 말하는 레시피와는 다르다 . 우계자 할머니의 두부에서 두터운 인생의 레시피를 배웠다 .

두부는 순하고 여린 음식이지만 가족을 먹여 살린 음식이었고 큰돈을 벌게 해주진 못했지만 그 맛을 잊지 못해 고개 너머 먼 길을 찾아와 할머니의 두부를 찾는 단골들의 신뢰의 음식이었다 . 순두부찌개에 들어가는 다섯가지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넣고 끓여 낸다.

“ 두부 잘 만드는 방법은 , 이것 하나만 잘 하면 돼 . 두부를 하면 버큼이 많이 나잖아 . 삶은 콩을 갈아서 가마솥에 끓일 때 버큼이 많이 나 . 그 버큼을 없애줘야 좋은 두부가 되는 거여 . 여산 두부공장에서 보니까 콩물이 부르르 끓어오를 때 뭘 붓더라고 . 물어보니까 안 알려줘 .

그래서 내가 집에 와서 만들면서 연구를 했지 . 해보니까 . 쌀겨 있지 . 예전에는 쌀겨로 사카린 넣고 개떡도 해먹기도 했지 . 먹을 것이 없으니까 . 그런 쌀겨를 누가 그러는데 버큼을 사르라뜨린다는 거야 .

그래서 그때부터 버큼 가라앉힐 때 쌀겨를 채에 걸러서 뿌리지 .” 할머니는 두부를 맛있게 만드는 비법 한 가지를 말해 주셨다 . 하지만 비법은 비법일 뿐 . 비법을 몰라 맛있는 두부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 어쩌면 답은 인생의 레시피에 있을 것이다 .

누구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46 년간 써온 할머니의 인생 레시피 . 화산면에 오시거든 우계자 할머니의 화산 손두부를 꼭 한 번 맛보시기 바란다 .

손님 없는 한가한 시간에 들리시거든 순두부찌개 한 그릇 주문해 놓고 할머니가 콩 삶으며 불 때던 아궁이 앞에 앉아 오랜 세월 할머니의 인생 레시피를 떠올리며 당신에게도 있을 인생의 레시피를 한 줄 한 줄 마음속에 기록해 볼 수 있다면 더 좋고 .

/글사진 =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우계자 할머니의 77년 인생레시피, 두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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