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면 밖으로 나오고 싶은 나의 아름다운 농장 이번 인터뷰의 소재는 미리부터 텃밭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 4 월의 텃밭은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이기 때문이다 . 그동안 꽤 많은 텃밭을 들여다봤다 .
할머니들이 가꾸는 소박하고 실용적인 텃밭에서부터 귀촌한 농사꾼의 제법 규모 있는 농장형 텃밭까지 . 그것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 , 다른 작물들로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
전주 상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2017 년 5 월에 퇴직하시고 , 용진읍 녹동마을에 살고 계시는 김영표 선생님의 정원과 텃밭을 찾았다 .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완벽했다 . 선생님을 소개해준 지인에게도 대충은 전해 들었지만 ,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 퇴직하고 아파트 생활이 답답했어요 .
그동안 땅을 너무 파고 싶은 거예요 .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영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어요 . 여기 와보니 245 평이에요 . 딱 좋더라고 . 여기 정도면 내가 살면서 놀이터 삼기 좋겠다 했는데 살아보니 여기도 좀 부족했어요 . 그래서 집 뒤편 땅도 빌려서 농사를 조금 짓고 있어요 .
원래 논이었던 곳이어서 땅이 질어요 . 그걸 밭으로 만들기 위해서 괭이질하고 퇴비 써서 땅을 만들었죠 . 일 년에 내가 키우는 작물로만 보면 50~60 가지 정도는 돼요 . 눈뜨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요 . 닭도 몇 마리 키우고 , 아로니아 나무도 심고 수박도 심고 아오리 사과도 심었어요 .
폐기물 주워 다가 하우스도 만들고 닭장도 만들고 그랬죠 . 시금치 , 아스파라거스 등 잎채소들도 많이 키우고요 . 닭도 키우면서 산란률이 높은 시기라든가 그런 것들을 많이 기록해놨어요 .
나는 천성적으로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그런 사람인 거 같아요 .” 선생님의 정원에는 수수꽃다리 , 꽃잔디 , 수선화 , 튤립 , 아오리 사과나무가 저마다의 색깔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 선생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산당화 꽃은 유혹적인 빛깔로 정원 한 켠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
봄꽃이 시작되었으니 늦가을까지 피는 국화까지 피어날 꽃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마당 하우스와 뒤편에 있는 텃밭에는 60 가지가 넘는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
상추 , 쑥갓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잎채소와 파 , 마늘 , 양파 , 오이 , 참외 , 브로콜리 , 양배추 , 인디언감자 , 와송 등이 자라고 있었다 . 올해 심어놓은 대추나무와 함께 사과나무 , 감나무 , 포도나무 등의 과수들도 빼놓을 수 없는 작물들이다 .
2018 년부터 시작된 선생님의 농사는 농업 선생님 출신답게 모든 과정이 엑셀 파일에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 선생님의 정원과 텃밭은 현실에서도 컴퓨터 파일 속에서도 언제나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
“ 처음에는 이런저런 과수를 좀 심었는데 땅이 안 맞아서 지금은 감나무 , 포도나무 , 사과나무가 잘 되고 , 올해 대추나무를 7 주 심었죠 . 와송 , 브로콜리 , 인디언감자 , 초석잠 같이 몸에 좋은 것들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
상산고에 있을 때는 학교 정원관리를 내가 많이 했어요 . 학교 남쪽 벽에 마삭줄이라는 것이 봄에 가면 정말 멋있어요 . 그때 묘목을 구해서 학교 직원들이랑 함께 심었던 거죠 .
상산고에 심어진 나무들을 분류하고 소개하는 나무지도를 PPT 로 정리해 놓기도 했어요 .” 김영표 선생님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 중학교 입학할 때 학생 카드의 장래희망 칸에 ‘ 농장 ’ 이라고 썼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농사짓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 . 하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해서 숯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 . 다시 농사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스물두 살 늦은 나이에 농고에 진학했지만 , 전교 1 등을 놓치지 않았던 선생님은 학교의 권유로 대학진학을 선택했고 서울대학교 농대에 입학했다 .
농업교육을 전공하고 전주 상산고등학교에서 농업을 가르치며 살아왔지만 직접 농사를 짓고 사는 꿈은 포기할 수 없었다 . “ 그때 서울 갈 때 기찻값이 지금도 기억나요 . 장성역에서 어둑해질 무렵에 완행열차를 탔어요 . 그때 요금이 540 원이었죠 . 새벽 4 시쯤에 용산역에 내렸죠 .
서울에서 숯 장사 하면서 집안 빚을 다 갚았지요 . 하루에 보통 15~20km 씩은 걸어 다녔어요 . 자전거 타고 다니고 니어카 끌고 다니고 그랬죠 . 숯을 한 섬을 사서 그걸 깨뜨리고 봉지에 담아서 동네 구멍가게에 납품하는 거였어요 .
한 봉지에 6 원 내지 7 원 하고 250 개를 팔면 1500 원 정도 하잖아요 . 그렇게 팔면 하루에 3~400 원 남았죠 . 3 년을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빚도 갚고 나니 다시 농사지으러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어요 .
그렇게 내려와서 고향에서 2 년 동안 농사를 짓다가 스물두 살이던 74 년도에 정읍농고에 입학했어요 . 늦게 시작한 공부라 열심히 했죠 . 그렇게 3 년 내내 일등을 했어요 . 원래 대학에 갈 마음도 없었고 형편도 그렇지 않았는데 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
그렇게 서울대 농대에 입학원서를 넣고 덜컥 합격이 됐죠 . 동네 이장이 마이크로 방송을 하고 동네잔치가 벌어졌어요 . 그때 인생이 180 도 바뀐 거죠 .
농장을 이뤄야지 하며 버텼는데 25 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땅과 멀어지게 됐어요 .” 오랜 꿈은 학교를 퇴직하고 아파트에서 벗어나 이곳 마을에 터를 잡은 2017 년부터 이룰 수 있었다 .
얼핏 들으면 평생을 교사로 재직하다가 은퇴해서 농촌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노부부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 누구에게나 그런 것처럼 선생님에게도 삶의 곡절은 적지 않았다 .
선생님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그런 것들을 모두 감당해냈고 지금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 “ 교사생활 하면서도 5 년만 월급 모아서 시골로 내려가자 그런 마음이 포개지고 또 포개지고 그랬죠 .
고향 친구들은 야산 개발해서 목장하고 과수원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 내 꿈이 그거였으니까요 .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그 친구들이 부럽고 서로 부러워하는 거죠 .
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오히려 퇴직하고 난 뒤에 교사생활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상산고 개교 3 년째에 들어갔거든요 . 그 당시 처음 담임 맡았던 첫 제자들이 아직도 남아요 .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누가 계산했다고 하면 제자인거야 .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그 친구들이 나를 기억하고 다가와요 . 뭘 얻어먹어서 좋은 게 아니라 다들 저마다 자리에서 일을 하며 어른이 된 제자들을 만나는 게 좋은 거죠 .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제자들에게 해마다 내가 키운 농작물들을 보내요 .” 무심코 쓰던 ‘ 은퇴 ( 隱退 )’ 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봤다 .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낸다는 뜻이다 .
맡은 바 직책도 없고 그럭저럭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실감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 평생을 교직에 계셨고 지금은 꿈에도 그리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선생님에게 ‘ 은퇴 ’ 는 어떤 의미의 단어인지 궁금하다 .
오랜 직책에서 물러나셨지만 , 더 즐겁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선생님의 인생에 ‘ 은퇴 ’ 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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