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세상에 손짓으로 말하는 사람 - 수어통역사 강지현 씨 이야기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몸짓과 손짓에 의한 의사 전달 방법 .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및 그 위치나 이동에 덧붙여 ,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종합하여 행하여진다 . ‘ 수어 ’ 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
예전에는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 하여 ‘ 수화 ’ 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 수어 ’ 는 2016 년 2 월 3 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며 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게 되었다 .
학교에서도 국어 , 영어를 배우듯 수어를 배우게 되는 세상이 올 듯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수어를 알지 못한다 . 나 역시도 23 년 완주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서 강지현씨를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이었다 .
그날 공연과 전시 사회를 진행하게 된 나는 어수룩하게 무대 위로 올라가 두서없이 말을 시작했는데 그 말들을 수어로 통역하던 사람이 바로 22 년차 베테랑 수어통역사 강지현 (78 년생 ) 씨 였다 .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수어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평생 직업이 되었다 .
98 년 전북수어통역센터지원본부가 생기면서 현재 전북특별자치도에는 15 개의 수어통역센터가 있다 . 지현씨는 2002 년 수어통역센터에 입사해서 남원에서 2 년 , 김제에서 2 년 반 , 전북본부에서 12 년 동안 근무하고 2017 년 완주수화통역센터로 이직해 지금껏 근무 중이다 .
어쩌다보니 전북 수어통역의 역사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 손이 바빴던 나날들이었다 . “ 대학동아리 활동할 때 제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단체하고 어울려서 농아인들과 함께 1 박 2 일 MT 를 갔었는데 .
그 전에는 비장애인들이 취미로 우리끼리 수화를 배우기만 하다가 그때 농아인들을 처음 만난 거에요 . 나도 1 년 반 동아리 활동하면서 수어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니까 잘 못하겠더라고요 . 우리가 학교에서 영어 실컷 배웠는데 실제로 외국인들 만나면 입이 딱 막히는 것처럼 .
교과서적인 것만 배웠지 농아인들이 실생활에 쓰는 표현은 하지도 못하겠고 이해하지도 못하겠는 거죠 . 어 ? 이게 뭐지 .. 내가 배운 것은 헛것인가 ..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사회 곳곳에 수어를 쓰는 사람이 많다면 농아인들은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겠구나 .
그때 그 밤에 그 생각인 든 거에요 .” 뉴스를 볼 때 화면 하단의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손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 . 내가 생각했던 수어통역에 대한 세상은 그 동그라미 보다 훨씬 작았다 . 강지현 씨에게 들은 수어통역사로 살아온 삶은 결코 화면의 동그라미 속 세상만큼 좁지 않았다 .
단순히 전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아인 삶 속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었다 .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농아인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
그나마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영상통화로 119 신고도 가능하고 TRS 라는 중계통역서비스도 있어서 연결방식들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 마저도 녹록지 않다 . “ 젊은 농아인들은 아무래도 수어통역센터에 의뢰하는 방식보다는 직접 중계통역서비스를 이용해요 .
통역사들이 24 시간 근무하면서 통역을 해주는 서비스인데 , 단점은 말의 오류가 있어도 그냥 그대로 전달만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 서로 관계라는 것이 없으니 . 영어문장을 구글 번역기로 돌릴 때 이상한 문장으로 번역되고 그러잖아요 .
어떤 한 사람의 말을 통역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한 사람의 배경이 쌓여 있어야 더 좋은 전달이 되는 거죠 . 그래서 통역을 맡겼던 사람한테 계속 맡기고 싶은 거죠 .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까 . 전달만 하면 편하죠 . 우리도 처음에 교육받을 때는 전달자로만 받아요 .
하지만 계속 수어통역사로 일하다 보면 전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해결이 있어야 해요 .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줄 수는 없어요 . 젊은 사람들한테는 ‘ 네가 먼저 해봐 . 안되면 도와줄게 ’ 먼저 그렇게 이야기 하죠 .
농아인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 의지가 생길 수 있도록 돕는 거죠 .” 수어통역사로 오랜 세월 활동하다보니 그에게 생긴 별명이 있다 . ‘ 병원은 강지현 .
큰 병엔 강지현 ’ 유난히 의료적인 응급상황이 많았고 농아인과 함께 병원에 동행해 수어통역을 하다 보니 간단한 의료지식들이 쌓이기도 했다 .
스킨스쿠버활동을 하던 농아인의 혈압이 올라 대동맥 박피로 위급상황일 때 그의 곁에 지현 씨가 있었고 큰 교통사고로 병원을 오고 가던 농아인 곁에 지현 씨가 있었다 . 혈액암 선고를 받았던 아주머니 곁에서 함께 울면서 통역을 했던 이도 지현 씨였다 .
신참내기 시절에는 어떤 상황이든 경험하고 싶어서 산부인과에서 아이 낳는 과정을 통역하기도 했다 . 그때 아이 낳던 농아인 언니의 손을 잡아 주었는데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지현 씨 손에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있다 .
매년 전북농아인체육대회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계시는 분들을 만나 안부를 주고받는다 . “ 배워야 할 게 많아요 . 법도 알아야 하고 의학도 알아야 하고 . 본의 아니게 농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상담도 하곤 해요 . 얘네들이 부모걱정이 돼서 곁을 못 떠나기도 해요 .
그럼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고 . 너네 부모님 씩씩하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 말고 할 일 찾아 떠나라고 . 그런 아이들 중에 특수교육과에 가서 특수교사가 되기도 하고 그랬죠 .
심리상담은 감사하게도 주변에 상담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청소년 상담하는 것도 도움 많이 받고 그 친구들이 어찌보면 제 슈퍼바이저역할을 하는 거죠 . 지금은 119 신고도 영상전화도 되지만 .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죠 . 새벽에도 전화가 오면 출동해야해요 .
퇴근을 하긴 하지만 그 후에도 대응해야 해요 . 그나마 지금은 새벽 3 시든 5 시든 출동하게 되면 시간외 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어요 . 그 전에는 그런게 없었어요 . 그냥 당연하게 일을 했죠 . 아무래도 사회복지 쪽 일이 그런 경향이 있어요 .
저는 어느 순간에는 ‘ 좋은 일 하시네요 .’ 라는 소리가 듣기 싫더라고요 . 그걸로 딱 씌어 버리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버려야 하는 거에요 . 나는 내가 일한 것에 대해 돈을 요구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죠 .
요즘은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면 그냥 웃으면서 ‘ 월급 받으니까 해요 .’ 그렇게 말해버려요 . 저에게 이 일은 직업인데 많은 사람들은 재능기부 , 봉사개념으로 생각하시는데 잘못된 생각이라고 웃으면서 짚어주는 거죠 .” 저녁 뉴스가 시작되면 이제 영상의 하단을 계속 보게 된다 .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수어통역사의 손동작 표정을 살피게 된다 . 지현 씨는 어느 곳이든 수어통역사가 있는 곳을 꿈꾼다 . 경찰서에도 , 병원에도 , 학교에도 . 어느 곳에서든 말소리가 들리듯 수어하는 손동작들을 보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 “ 서로 모르니까 다가가기 어려운거에요 .
한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계기가 없었으니까 몰랐던 거죠 . 수어를 몰라도 되요 . 서로 관계가 생기고 손짓발짓으로 전달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
서로 눈을 보고 알아 가면 다 알게 되어 있어요 .” /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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