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 두 번째 이야기 - 소양면 화심도요 임경문 도예가 만덕산 자락 옛 가마터가 있던 자리 . 옛 도공들의 영혼이 깃든 곳에 화심도요가 있다 . 문화재 재현을 위해 도자기를 이루는 근본적인 흙을 포함한 자연을 찾아 이곳에 온 이들이다 .
화심도요 옛 가마터에는 봄을 알리는 노란 복수초가 한창이다 . 봄이 왔으니 겨우내 작업실에서 도자기 흙을 만지던 임경문 도예가와 도헌선생은 밭에 나가 거친 흙을 만진다 . “ 봄이 되면 거의 농사와 병행해요 . 새벽 다섯시가 되면 밭에 나가요 . 쌀 빼고 다 지어먹어요 . 작물이 30 가지가 넘어요 .
밭이 600 평정도 되거든요 . 씨 뿌려서 모종 키워 그것들을 다 밭에 심고 . 그렇게 해야 맛이 좋아요 . 온갖 것들을 다 심어요 . 자급자족하기 위해서 .
도자기도 그렇고 의식주도 그렇고 자급자족의 방식을 하고 있죠 .” 도자기 만드는 손은 곱게 아꼈다가 도자기만 만들어야 된다는 나의 생각도 편견이었다 . 이들은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내 몸을 아끼는 것 보다 생활을 스스로 해 나가며 힘을 키우는 고수들이다 .
2012 년 임경문 도예가의 고향 소양면으로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을 때도 이들은 직접 손으로 집을 지었다 . “ 이 집을 5 년 동안 선생님이랑 선생님의 형님 , 저 셋이서 지었어요 . 크레인 두 번 부르고 바닥공사한다고 포크레인 세 번 부르고 . 나머지는 우리가 다 직접 했어요 .
전기 , 용접 , 타일 선생님이 다 직접 하셨어요 . 원래 하실 줄 아셨던 것이 아니고 공사 하는 곳에 가서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셨어요 . 눈으로 보면 금방 손으로 하실 줄 아세요 . 처음은 난장같은 곳에서 지내면서 제일 먼저 잠잘 공간 만들었죠 . 힘들만도 한 데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
서로 애쓰니까 서로 격려하고 웃고 재미있게 집을 지었던 것 같아요 .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까 연구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 싸움이나 다툼 없이 서로가 측은한 마음이 많았죠 .”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어쩌면 부부의 인연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임경문 도예가가 스승이던 시절에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 스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 몇몇 제자들은 그 점을 답답하게 여겨 곁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도헌선생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 그는 약속도 없이 불쑥 도헌의 개인작업실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나 늘 작업 중이던 도헌을 좋게 본 모양이다 .
눈 돌릴 줄 모르고 욕심 없이 꿋꿋하게 작업하는 제자의 모습이 자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 도헌은 그런 스승의 모습에서 쓸쓸함을 봤다고 한다 . “ 선생님이 부안에서도 10 년 정도 계셨어요 . 우동도요시절이었는데 , 부안 살적에는 한 달 생활비가 15000 원이었대요 .
계란 한판 , 밀가루 한 포대 . 다시 멸치 . 그게 살림의 전부였죠 . 수업 받으러 부안 작업실에 한번 씩 가서 보면 사계절을 온기가 없는 방에서 사세요 . 수업 끝나고 나서 선생님 열악한 작업실 생각이 나서 울었어요 .
해질녁 불을 켰는데도 촉이 오래되어서 밝지 않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작업을 하시는 선생님을 봤을 때 너무 고단하고 외로워 보였어요 . 그날 돌아와서 친구랑 술을 마시며 그런 사람도 있더라 이야기 하면서 울었죠 . 아마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봐요 .
그 쓸쓸함이 내 마음에 다 스며드는 순간이었어요 .” 돈이 조금만 생겨도 늘 나무를 사서 쌓아 놓던 사람이다 . 집에 쌀은 떨어져도 가마에 불 뗄 나무는 떨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 오죽했을까 .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곤 해서 완주로 이주해 온 뒤 처음 몇 해는 매일 7 첩 반상에 풍족하게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 도헌선생도 도자기에 빠져들며 처음에는 가스가마를 사용했는데 불 떼고 흙 만들고 천연유약만드는 비법들은 화심도요 시작하며 임경문 도예가에게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
가마에 불 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흡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 가끔 미디어에서 하얀 한복을 입고 가마에 장작을 넣는 점잖은 도예가의 모습들을 보곤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보여지기 위해 만든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일 년에 세 번 정도 가마에 불을 뗍니다 .
봄 가을철에 5 박 6 일 동안 . 가마의 화도가 엄청 높아요 . 1300 도까지 오르거든요 . 그러려면 40 초 ~50 초에 한번 열 시간 넘게 계속 나무를 넣어줘야 해요 . 나무가 탁탁탁 타는게 아니고 장작을 넣으면 파지직 하며 사라져요 .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냥 하는 거에요 .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 정말 5 박 6 일 잠을 못 자고 하는 거에요 . 되게 절박하게 불을 떼요 . 나중에 우리 둘을 보면 콧구멍 귓구멍 안 까만 곳이 없어요 . 얼굴은 숯검댕이 되어있고 . 저희는 잡목은 절대 안 떼요 .
참나무 소나무 빼고 잡목은 일체 안 넣고 이 만한 티끌도 못 들어가게 하는데 삼겹살 같은걸 옆에서 굽는 쇼는 못하는 거죠 . 잡목은 일절 안 되고 3 년 이상 건조된 참나무와 소나무를 써요 . 소나무 송진에서 철분 성분이 나와서 비취빛을 만들거든요 . 그래서 고려청자 구울 때는 백프로 소나무를 떼요 .
흙은 바탕이고 불하고 유약이 물감의 역할을 하며 같이 동화가 되는 거죠 . 가마 안에서 불과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색이 나오는 거죠 .” 흙을 만들고 도자기를 빗어서 가마에 넣고 나무를 넣는 것 까지는 사람의 몫이지만 가마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제 불에게 맡겨야 한다 .
5 박 6 일의 전쟁을 치루고 온기가 빠져나간 가마 안을 빨리 들여다보고 싶겠지만 임경문 도예가는 그 순간을 가장 머뭇거린다고 한다 . 어떤 때는 한 달이 지나도록 가마 문을 열지 않을 때도 있다 . 나는 그 머뭇거림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 컷을 촬영할 때 깊이 들여다보고 소중하게 셔터를 누르고 사진관에 맡긴 후 일주일을 기다리던 그 심정과도 비슷할까 . 간편하고 획일적인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고 쉽게 버려지는 세상 속에서 임경문 도예가와 도헌 선생은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다 .
“ 편법들을 보게 되면 더 고집스럽게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있어요 . 그러다 보니 더욱더 견고해지는 거에요 . 주변이 어그러져 갈수록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 하나가 빠지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거든요 . 본인 스스로를 계속 각성시키시는 거죠 .
좁지만 순수한 길을 찾아 가는 거죠 . 일생이 도자기세요 .
장애나 편견 없이 본인이 빛날 수 있는 것이 도자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 /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정보] 화심도요 공식 인스타그램 @hwasimdoyo ▪ 완주군 소양면 상관소양로 838-20 ▪ hwasimdo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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