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산 아래 살게 된 사람 - 은천마을 검은별농장 김동현 유순례 부부 늦가을의 동상면 깊은 산골에는 일찌감치 겨울이 앉아 있다 . 동상의 산골로 향할 때 마다 아득하고 아늑함을 느낀다 . 대아저수지를 끼고 구불구불 길을 휘돌아 가다보면 떠나온 곳도 가야할 곳도 아득해진다 .
이내 깊은 산으로 쑥 들어가게 될 때 묘하게 편안해진다 . 여름의 푸른 산도 좋지만 낙엽 떨어진 늦가을의 산은 묵직하고 고요하다 . 깊은 산 은천마을의 김동현 , 유순례 부부를 찾아가는 길이 그러했다 . 점심을 거르고 찾아간 나에게 따뜻한 밥상을 먼저 내어 준 그들이다 .
산과 땅에 기대어 먹고 사는 사람 집이 그러하듯 채취한 작물들을 갈무리해 말려둔 것들이 집안 곳곳에 있다 . 일찌감치 영업 시작한 난로 옆에는 빚어둔 메주가 고이 모셔져 있다 . 고로쇠 물로 조만간에 장을 담을 계획이란다 . 저 너머로 보이는 장군봉.
고로쇠, 약초, 싸리버섯 능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오르는 산 11 년 전 김동현 , 유순례 부부는 평생 살던 경기도 부천을 떠나 동상 은천계곡에 터를 잡았다 . 농사지을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 그저 산이 좋아 산 아래에 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어엿한 농장을 운영하는 삶을 살고 있다 .
은천마을 검은별농장 전경 ‘ 흙 한번 파본 적 없는 농사 풋내기가 산 속이 좋아 귀농을 했다 !!’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검은별 농장의 온라인 카페 소개 글이다 . 느낌표가 두 개나 붙은 이 문장에서 11 년 전의 초심이 느껴진다 . 김동현씨도 그 당시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몇 마디의 말을 건넨다 .
그 동안의 삶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의 산속으로 자신을 끌어 들인 것 같다고 . 산 좋아 하던 회사원 등산용품점 사장이 되다 . 흙 한번 파본 적 없는 이들 부부는 어쩌다 산골에 살게 된 것일까 . 따뜻한 난로가에 앉아 이들 부부의 삶의 서사를 들어본다 .
부천에 살았던 청년 김동현씨는 가구회사에서 일을 했다 . 회사 다닐 때에도 산에 미쳐 있던 사람이었다 . “ 나는 해고 순위 일순위였지 .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일을 했거든요 . 근데 나는 주말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요 . 야근도 안했고 . 산에 가야 하니까 .
금요일 회사 갈 때 아예 배낭을 메고 가요 . 퇴근하자마자 밤에 산을 가서 일요일에 집에 왔죠 . 안 가본 산 없이 다 다녔죠 .” 90 년대 초반 회사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일을 찾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 92 년 등산용품사업을 시작한 계기이다 .
처음에는 등산용품 수입하고 영업하는 일을 하다가 부천에 ‘ 청봉산악회 ’ 라는 이름으로 멀티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
지금처럼 거대한 기업이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매장 사장이 직접 여러 업체의 등산용품들을 선택해서 구비해 놓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고 , 사장의 개성 있는 취향을 엿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 지금의 등산용품점과는 다른 손님과의 유대관계도 깊었다 .
손님으로 온 사람이 함께 산을 타는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 주말마다 산을 오르던 회사원 김동현씨는 이제 등산용품점 사장이 되었다 . 직접 사용해보고 장단점을 알아야 용품들을 잘 팔수 있으니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주말마다 산으로 향했다 .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타는 친구들과 살다시피 보낸 끈끈한 시절이다 . “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 나도 처음에 워킹산행을 했지요 . 그러다가 리찌산행을 하지요 . 능선을 넘을 때 바위를 많이 밟게 되는데 거기에서 스릴을 느끼면 암벽으로 빠지게 되요 .
저도 그런 과정을 거친 거죠 . 암벽등반 하는 팀에 가입하려면 등산학교를 다녀야 해요 . 암벽등반은 교육을 사주동안 받고 전회원이 만장일치로 오케이 해야지 가입할 수 있어요 . 조건이 까다롭죠 . 암벽등반은 내 목숨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거거든요 .
내가 올라갈 때 내 줄을 잡아 주는 파트너하고 항상 교감이 되어야 해요 .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못 믿으면 암벽등반을 할 수가 없어요 . 그래서 등산학교 암벽팀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평생 같이 가요 .
끈끈한 무언가가 있지요 .” 캠핑 동호회 회원들이 만들어 준 문패 판매하던 등산캠핑용품들을 지인들에게 다 넘겨주고 간직 중인 석유랜턴 김동현씨의 안목과 취향으로 알뜰하게 채워진 가게도 대기업의 물량공세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
97 년 즈음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오토캠핑장비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다 . 수입해서 한국에서 비슷한 모델로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했다 . 우리나라 캠핑 1 세대이다 . 만명정도의 회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의 대장역할도 했다 .
그 당시 그의 닉네임은 하얀선 , 아내 유순례씨는 까만 선 . 이십년지기 캠핑 동지들은 주말이 되면 여전히 하얀선 , 까만선이 사는 동상 오지 산골로 찾아온다 . 산에서 먹고 사는 일 십여년 전 동상의 3 월 , 봄이 무색하게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는데 그것도 참 좋았단다 .
지인들과 우연히 캠핑을 했던 곳 , 은천계곡 산골에서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내 유순례씨가 더 적극적이었다 . “ 부천에서 살 때 캠핑장비 수입하면서 월말 되면 결제하느라 바쁜 거에요 . 말일이 되면 스트레스가 심했죠 .
캠핑을 다니면서 캠핑장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동상 들어오는 길도 좋고 조사해보니 전북에는 사설로 하는 캠핑장이 없었어요 . 7 천 평이 넘는 땅을 둘이서 2 년은 죽어라 청소만 했어요 . 그렇게 시작한 캠핑장이 전라북도 1 호 오토캠핑장이었지요 .
그 당시 지역 방송국에서 촬영도 오고 꽤나 유명했었죠 . 처음에 이 산골짝에 캠핑장 한다고 하니까 이 동네 분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 그 당시에 겨울 동상 산속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 근데 캠핑장을 하니까 겨울 산골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 거지요 .
그러다 보니 다른 캠핑장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우리는 점점 농장 일에 전념하게 되었지요 .” 올해는 감 흉년이 들어 곶감 수가 줄었다. 올해 처음으로 5천평을 빌려 배추농사를 지었다. 김동현씨는 이제 산을 졸업했다고 말한다 . 지금 오르는 산은 먹고 살기 위해 오르는 산이다 .
“ 산이 좋아 산 속으로 들어왔으니 산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해야죠 . 지금은 감 작업하고 2 월 중순 되면 장군봉 올라가서 고로쇠 채취하고 봄 되면 고사리 , 산나물 채취하고 양봉하고 여름에는 펜션장사 하고 가을에는 약초 캐고 , 능이 , 싸리 버섯 따고 . 내가 채취해오면 아내가 갈무리 하죠 .
둘이 손발이 잘 맞아요 . 저는 귀농을 한 것이 아니라 캠핑장으로 장사를 하러 귀촌 한건 데 자연스럽게 산에서 나는 것들을 채취하면서 귀농의 삶으로 전환 된 거 같아요 .” 나는 난로다 행사장에서 군밤파는 김동현 유순례 부부의 모습.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주운 밤들이 저장고에 가득이다 .
올해 완주의 축제장에서 군밤 파는 이들 부부를 목격한 이들이 꽤 있을 거다 . 아껴둔 밤을 가지고 12 월에 열리는 운주 곶감축제에서 부부군밤장수로 활약할 예정이니 꼭 가보시길 . 딸이 저장고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자신과 오빠의 모습과 집에 키우는 하얀 개 봄이와 까만 개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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