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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9.11.14

백성녀 할머니의 100년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9.11.14 13:46 조회 1,47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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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지났어도 가을 산처럼 눈부시게 동상면 수만리 입석마을 백성녀할머니 11 월이 시작되고 가을 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 야트막한 산비탈에 자리 잡은 붉나무가 먼저 빨갛게 물들었고 온 산에 지천인 도토리나무들도 점점 연노랑 색으로 번져가고 있다 .

단풍 든 가을 산의 색채와 질감을 햇살과 바람에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그 산의 모습을 나는 제대로 된 말과 글로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 다만 그 풍경이 참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다 . 동상면 수만리 입석마을의 백성녀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은 온통 단풍이 시작되고 있는 가을 산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

IMG 3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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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설 쇠고 백 살이여 지금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실제로 백세가 된 어르신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 칠십대와 팔십대에 접어든 어르신들은 더러 인터뷰에 나섰지만 백세를 맞은 어르신을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할머니는 마을회관에도 댁에도 계시지 않았다 .

밭에서 일하시는 마을 어르신께 할머니가 어디 계신지 여쭈었더니 손가락으로 뒷산을 가리키며 저 산에 가셨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백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오르기에는 제법 큰 산이었다 .

산 아래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고 있을 때 멀리서 분홍색 윗도리를 입고 뒷짐을 진 채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 산 속에 있는 표고버섯 밭에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 할머니가 매일 산책하는 산 “ 고향은 여기 입석마을이여 .

우리 아버지가 백씨인디 나하고 언니하고 둘만 낳았어 . 키워서 나를 아들로 삼았고 사위를 집으로 들여서 돌아가실 때 까지 내가 모시고 살았어 . 어머니 , 아버지 다 일찍 돌아가셨어 . 우리 백시덜 다 일찍 돌아가셨는디 나만 이렇게 오래 살았네 .

아버지는 칠십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육십 다섯에 돌아가시고 우리 형님도 저기 사복리 사는디 , 아들 삼형제 딸 둘 그렇게 낳아서 팔십 야달인가 먹어서 갔는디 나는 이렇게 백 살 넘도록 살아 있어 .” 6.25 때 용케 살아서 내가 오래 사는가벼 백세를 일컫는 말로 ‘ 상수 ( 上壽 )’ 라는 표현을 쓰지만 국어사전에는 ‘ 오랜 세월 ’ 이라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

이토록 오랜 동안 살아오신 어르신께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계신지를 여쭙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깊지만 정갈하게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면서 그래도 가장 힘든 시절이 언제였는지 여쭤봤다 .

“ 하이고 , 사는 것이 참말로 6.25 사변 일어나 갖고 참 고생헌 것이 말로 다 못혀 . 빨치산들이 들어와서 집 다 불 질르고 사람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어 .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 사람들한테 붙잡혀서 내가 산 속에 도망가 있다가 찾아 왔는디 몇 번 총으로 쏴서 죽일라고 해도 어떻게 용케 살았어 . 그리서 어머니 아버지 데리고 온 게로 대한민국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 아니냐고 나를 죽여 버린다고 끌고 가는디 또 어떻게 용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살게 됐어 .

그때 나 나이가 스물 다섯살인가 됐어 . 그리서 내가 이렇게 오래 사는가벼 .” 막내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 집 할머니는 6.25 전쟁과 그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참 오랜 동안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다 .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 집과 전답이 불에 타고 ,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숨고 , 송광사까지 도망가서 아이들을 맡기고 부모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넘은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해 내셨다 .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 참 살기 좋다는 말씀도 하셨다 .

할머니가 다니시는 낡은 외양이 멋스러운 교회 “ 나 열일곱 바깥양반 스물한 살 먹고 결혼했어 .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기가 막히게 키웠지 . 바깥양반 이름이 유성배 . 논산 사람이여 . 부모님이 일찍이 죽어서 여기 와서 살다가 누가 말을 해줘서 결혼했어 . 나한테 참 잘해줬어 .

일십칠 년 전에 돌아가셨지 . 딸 셋 아들 둘 뒀어 . 평생 여기서 살았지 . 전주 사는 딸들이 저희 집이서 살라고 그래도 아파트 갑갑해서 살도 못해 . 여기 있으면 며느리가 겁나게 잘 혀 . 농사 지어먹고 살았어 . 나락 , 콩 , 팥 , 서석 그런 거 해 먹었어 . 여기는 감 농사를 많이 해 .

일정 때는 일본 놈들이 다 와서 따가고 그랬어 . 한국 사람들 다 보내고 지들이 여기 와서 살라고 그랬는데 ,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만세 불러갖고 안 가도 됐어 . 그때는 라디오도 없고 병원도 없고 약방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 . 그때는 병에 걸리면 겁나게 죽었어 . 지금 세상 좋지 .

자기 맘대로 먹고 잡은 거 다 먹고 정부서 다 이렇게 돌봐준 게 얼매나 좋아 .” 백살이나 먹은 내가 탐날 게 뭐가 있어 할머니의 기억과 이야기들은 백년이라는 세월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 농사 이야기 , 일정 때 이야기 같은 복잡하고 다단한 기억들을 막힘없이 풀어내셨다 . 오랜 세월 탓에 귀는 잘 들리지 않으셨지만 말씀만은 논리가 정연했고 막힘이 없으셨다 . 마을회관 할머니 곁에는 늘 칠순 팔순의 마을 할머니들이 함께 앉아 계셨다 .

입석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식사 중인 백성녀 할머니. 밥 한 그릇 거뜬히 드시고 식후에 커피 한 잔씩 꼭 하신다. “ 저번 10 월 3 일 날 백살잔치 했어 . 딸들이 아들하고 다 걷어갖고 했어 . 마을사람들 음식도 대접하고 손님들도 많이 오고 아들 친구들이 돈도 가져오고 금도끼도 하나 해오고 .

며느리 줘버렸어 .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필요가 없어 . 옷이고 신발이고 용돈이고 다 딸들이 줘 . 며느리들도 잘 혀 . 나는 자식들이 주는 놈 갖고 살아 .

백 살이나 먹은 내가 탐날게 뭐가 있어 .” 할머니는 지금도 밥 잘 드시고 보건소에서 다리 아픈 약 타 드시는 것 말고는 약도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 다행스러운 일이다 .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오면서 봤던 가을 산의 단풍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색채와 질감 , 햇살과 바람에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단풍처럼 할머니의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 입석마을의 바위가 마을의 이정표가 됐던 것처럼 백년 넘게 마을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서도 오랜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으면 좋겠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백성녀 할머니의 100년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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