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출몰하면 백씨 형제를 불러주오 외율마을 백정식 소설 小雪 이 지났다 . 완주에 내린 첫눈은 제법 거창했다 . 농작물이 자라던 논밭은 텅 비어있지만 , 그 비어있음으로 밤낮없이 일하던 농민들은 찰나의 쉼을 얻기도 한다 . 그 쉼은 멈춰있지 않다 . 저마다 고물거리는 움직임이 있다 .
멀리서 보면 산과 논밭과 강이 흐르는 고요한 시골풍경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삶이 있다 . 올 겨울에는 사냥하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봤다 . 들여다보기 전의 내 상상 속 사냥꾼은 털모자를 쓰고 총을 들고 눈 덮인 산 속을 발로 헤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
영화 속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던 배우 최민식의 거친 모습이었달까 . 사냥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화산의 단골 손두부집에서 시작됐다 . 갈 때마다 군인들의 전투복 같은 옷을 입은 대여섯명의 아저씨무리들과 마주친 일이 있었다 .
손두부집 할머니에게 무슨 일하는 분들이냐고 물으니 , 멧돼지 잡는 사냥꾼들이라고 하셨다 . 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다며 밥 때 되면 매일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온다고 했다 . 사냥꾼들의 채식이라 . 식당 앞 평상에서 이 쑤시는 아저씨들과 두런두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정식이 형님, 정식이 삼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식이라고 불리는 그. 현재 건재상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고산 외율마을에 살며 읍내 건재상에서 일하는 백정식 (46 세 ) 씨다 .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 정식이 형님 ’ 혹은 ‘ 정식이 삼촌 ’ 이라고 불리는 친근한 사람 .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키 크고 인물 좋고 일 잘하고 서비스 좋고 농사 잘 짓는 ‘ 정식이 ’ 라고 불리는 사람 . 손수 만든 모과차를 난로 위 주전자에 따뜻하게 끓여서 지나는 사람에게 한 잔씩 주는 사람이다 .
사람 좋아하는 백정식씨가 일하는 건재상 사무실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늘 모여 앉아있다 . 백정식씨 취재를 앞두고 산 속을 헤매며 동반 사냥을 나가야 하나 , 실제로 멧돼지를 보게 되는 것인가 , 걱정 반 근심 반이었다 . 하지만 올해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해 당분간 야생동물포획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
사냥 동행취재는 물 건너갔지만 백정식씨가 끓인 모과차를 마시며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 농민들의 골칫거리 해결사 포획봉사단 사냥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사냥꾼들이라고 부르지만 이들 대부분은 본업이 있고 사냥은 자원봉사로 하고 있다고 한다 .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하는 ‘ 포획 봉사단 ’ 이다 . 완주군의 포획 봉사단은 13 개 반 39 명 (16 년 기준 ) 으로 구성되어 있다 . 농가가 피해 발생 사실을 읍 · 면 또는 군청에 신고하면 이를 확인한 후 해당 지역에 포획허가를 내고 출동해 유해 야생동물을 잡는다고 한다 .
정성스럽게 농사지어 수확만을 앞두고 있는 농민에게는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야생동물들은 큰 골칫거리다 . 논 밭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해 유해동물을 차단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다 . 멧돼지는 식욕만큼 번식력도 왕성해 매년 5 월 무렵 보통 7~8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
포획봉사단들은 허가받은 곳에서 적극적인 수렵활동으로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야생동물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 백정식씨는 십년 전부터 두 살 위 친형님과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다 . “2 인 1 조 . 우리 백씨 형제가 한 팀이에요 . 사냥은 형님이 하고 나는 운전하고 조수 일을 하는 거지 .
고산면하고 화산면을 돌아다니고 있죠 . 주로 멧돼지 , 고라니 , 꿩을 잡아요 . 활동하는 시기는 따로 없이 일 끝나면 매일 밤에 사냥을 나가는데 요즘처럼 조류인플루엔자 발생하면 사냥 쉬어야 하고 명절 때도 사냥이 금지되어 있어요 . 엽총은 고산 파출소에서 관리해요 .
우리가 총을 사용하는 시간은 오후 6 시부터 다음날 아침 9 시까지에요 . 밤에 작업할 때 주로 서치를 켜서 작업하죠 .” 낮에는 동물들이 산에 숨어 있어 산을 헤치며 사냥을 한다지만 , 밤이 되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동물들이 농가로 내려온다고 한다 .
밤에 사냥하는 백씨형제는 마을 주변 길로 차를 운전하며 밭을 향해 서치를 비추면 야생동물 눈빛이 반짝 빛날 때 총을 쏜다고 한다 . “ 나는 밤에 술 먹고 놀고 싶은데 자꾸 형이 나가자고 하니까 따라 나가는 거죠 . 형 혼자서도 사냥을 하지만 혼자서는 힘든 일이에요 .
십년동안 한 일이지만 매번 나갈 때마다 조심스럽고 위험하죠 . 총알이 이백미터를 날아가는데 그 총알 맞고도 도망가는 멧돼지가 있어요 . 그럴 때 무섭지 . 멧돼지가 사람을 덮칠 수도 있으니까 . 그리고 멧돼지가 보기보다 무거워요 . 차에서 몇 백미터 떨어져서 잡았을 때는 사람 힘으로 못 들어요 .
그럼 로프를 멧돼지에 묶어서 차로 끌어내서 옮기죠 . 하루 저녁에 한 마리도 못 잡을 때도 있고 5~6 마리 잡으면 많이 잡은 거지 . 작년 겨울에는 아침 일찍 고산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 파출소 안에 멧돼지가 들어왔다고 .
우리 형제가 출동해서 인명피해 없이 잡았던 일도 있었네 .” 야생동물피해농가의 민원으로 밤마다 자원봉사로 포획활동을 하고 있지만 , 이런 활동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들고 사냥하는 이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
밤에 총소리를 듣고 불안해하는 주민들의 신고전화를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 그래서 사냥을 할 때는 관할파출소와 매번 위치확인을 하며 사냥을 한다 . 오복림 노모와 함께 고산 밤실에서 태어나 청년시절을 보내고 삼십대 무렵 잠시 군산에서 살 때도 백정식는 늘 고향이 그리웠다고 한다 .
형님이 조르니까 마지못해 밤마다 같이 사냥을 나간다고 하지만 백정식씨는 이 모든 일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하다 . 어린 시절 어울려 다니며 산에서 칡 캐고 땔감나무하고 새총으로 새잡고 올무로 너구리 , 토끼 , 꿩 잡던 추억 . 놀면서 일을 배웠다 .
마을 잔치 때 어른들이 돼지 잡고 소 잡을 때 어깨 너머로 배웠던 도축방법들 . 삶의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백정식씨도 마을의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 “ 이거저것 많이 해봤어요 .
관광버스도 해봤다가 크레인도 했다가 지게차 , 포크레인 , 페로다 , 기중기 , 버스자격증 , 하다보니까 자격증을 많이 땄네 . 아무래도 거친 현장에 있으면 사람도 좀 거칠어야 하는데 난 생긴 것만 이렇지 안 거칠어요 . 그래서 현장일 포기하고 고향으로 온 거지 .
거친 현장에 있으려면 싸움도 하고 욕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지 . 내가 어렸을 때는 소 키워보려고 전주농고를 갔어요 . 그때는 목장 운영하는게 꿈이었어요 . 근데 학교 가서 실망을 했죠 . 땅 없고 돈 없는 사람은 힘들더라구요 .”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 질 것이다 .
그의 노모와 형님부부와 함께 사는 집 앞마당에는 염소 두 마리와 개 한 마리 닭 오십여마리가 함께 부대끼며 살고 있으니까 .
고산면 외율마을에 위치한 집(위)과 백정식씨가 키우고 있는 염소(아래)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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