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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9.05.03

마할키타 로르나, 말리파윤 로르나!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9.05.03 11:43 조회 1,48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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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hal Kita 마할키타 로르나 , Malipayon 말리파윤 로르나 ※ 필리핀 말로 마할키타는 사랑한다 , 말라파윤은 즐겁다는 뜻이라고 한다 로르나를 인터뷰하기 전에는 그녀의 한국살이가 어떤지가 궁금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쓰면서 문득 그녀가 살았던 필리핀의 고향마을이 더 궁금해졌다 .

그녀의 고향은 필리핀 보훌섬 타크 빌라란시 루운 빅옷마을 . 구글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는 놀라웠지만 그녀의 고향마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 대신 집에서 5 분 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전형적인 해안가 시골마을이라는 그녀의 설명을 상상해보며 비슷한 해안가 마을을 천천히 살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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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는 마을 바닷가에서 매일 놀았어요 . 밥만 챙겨가서 바닷가 가서 직접 반찬을 구해서 바로 해먹는 거죠 . 물 빠지면 물고기 그냥 건져서 먹기도 하고 , 조개도 줍고 , 미역도 따고요 . 필리핀의 전통 집은 바하이 쿠보 Bahay Kubo 라고 부르는데 나무 집이라고 볼 수 있어요 .

대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야자수 잎 , 코코넛 나무 잎으로 지붕을 만들어요 .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바닥에 2 미터 정도의 돌과 나무로 기둥을 세워서 집을 짓죠 . 그 집에서 엄마 , 아빠 , 8 남매 열 명이 함께 살았어요 .” 로르나의 필리핀 고향마을 해변인 나포비치.

집에서 식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로르나 ( 로르나 유손 코리티코 Lorna Yuson Coritico 45 세 ) 는 한국인들에게 제법 많이 알려진 세부 (Cebu) 아래쪽에 있는 섬 보훌 (Bohol) 의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27 년을 살았다 .

2002 년 한국으로 이주해 지금 남편과 결혼했고 이왕형 , 효형 , 장형 , 심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 넷을 낳았다 . 그 사이 완주군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했고 2014 년에는 기전대학교 언어교정과를 졸업했으며 6 년 전부터 고산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

그녀는 17 년째 대한민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살아가고 있다 . “ 한국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어요 . 마닐라에서 한국 가기 위해 교육을 받았는데 몇 달 있다가 갑자기 선을 보게 된 거죠 . 근데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 집에 인사시키러 갔더니 다들 깜짝 놀랐어요 .

부모님도 처음에는 놀랐는데 남편 보더니 마음에 들어 하고 나도 그때는 나이가 많아서 알아서 할 나이이기도 하고 부모님은 제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셨어요 . 그렇게 정신없이 결혼하게 된 거죠 . 한국은 아직까지도 여자는 집에서 일하고 남자는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거 조금 남아 있잖아요 .

필리핀에는 그런 거 없어요 . 여자 남자 같이 해요 . 남자도 주방일 하고 함께 일해요 . 처음에 우리 신랑이 한국에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그래서 무슨 말이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알았어요 라고 했는데 지금 그런 소리하면 내가 뭔 소리를 하냐고 그러죠 ^^ 같이 일해야 하는 거예요 .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잖아요 .” 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로르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 먼 나라에서 이곳 한국의 농촌마을로 시집와 살고 있는 다문화여성들의 삶이 신산해 보인 적이 있었다 .

하지만 한국의 가부장 문화가 낯설었고 필리핀에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 차이가 별로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약간 겸연쩍었다 . 젊은 나이에 낯선 나라 한국으로 일하러 가기로 한 것도 , 결혼을 한 것도 , 아이를 낳고 일을 시작한 것도 그녀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 가장 힘들었던 건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 . 그래도 완주문화원과 고산농협을 오가며 한국말을 배웠고 지금은 누구와도 능숙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 “ 처음 한국에 와서 5 년 정도는 참 힘들었어요 .

돈 벌고 싶었는데 집에서 농사만 지으니까 많이 답답했죠 . 지금도 집안에서만 일하면 답답해요 . 나는 바깥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아요 . 몸은 힘들어도 바깥에서 사람만나고 막 돌아다니는 일이 나한테 맞아요 . 보통 아침 6 시에 일어나요 . 살림하고 일하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배구도 해요 .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 주말리그도 다녀요 . 원래 필리핀에 있을 때도 농구 배구 잘했어요 . 오히려 운동 안하면 몸에 힘 빠져요 . 낮에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운동하고 스트레스 풀어요 . 완주 주말 리그는 4 월 13 일에 시작해서 곧 다가올 6 월 8 일 삼례초등학교에서 경기 있어요 .

팀 이름은 다문화 팀이에요 .” 로르나는 밥하고 빨래하고 시어머니 돌보고 일하고 또 좋아하는 배구도 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참 바쁘게 산다 . 필리핀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농사도 짓는다 . 나락 , 고추 , 양파 , 마늘을 심어서 팔기도 하고 먹기도 한단다 .

완주 주말리그에 참여하는 다문화배구팀 회장 , 완주 다문화 필리핀 연합 회장 , 전라북도 필리핀 연합 총무라는 직함도 그렇게 해서 하나씩 늘어난 그녀의 일들이다 . 너무 밝고 씩씩한 그녀에게 그래도 힘든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 “ 지금도 좋아하는 거 있고 싫어하는 거 있고 . 똑같이 있어요 .

좋아하는 것만 있으면 이상해요 . 싫어하는 것도 있는 거예요 . 힘든 것도 있고 편한 것도 있고 , 좋아요도 있고 싫어요도 있고 , 나 모든 감정 다 있어요 . 좋아요만 있으면 힘든 일이 올 때 당황하잖아요 . 그래서 나는 좋고 싫은 것들을 늘 생각해요 .

그래서 힘든 일 있고 스트레스 받아도 아 , 내가 지금 힘들구나 그냥 생각하면 그게 휙 지나가요 . 어려운 일 닥쳐도 나 괜찮아요 . 견딜 수 있어요 .” 대답을 듣고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녀에게 이토록 낙천적인 성정을 만들어준 필리핀의 섬마을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그곳 다갓 ( 바다 ) 에서 씨앙 ( 조개 ), 릿똡 ( 꼬막 ), 로못 ( 미역 ) 을 건져내며 놀았던 로르나 . 다갓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들은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 우리네 초무침처럼 식초와 야채 썰어 넣고 버무려 먹기도 한다 .

고향음식을 설명하는 로르나는 먹고 싶어서 침이 나온다며 환하게 웃는다 . “2010 년 지진 때 걱정 많이 했어요 . 사람만 안 다치면 되요 . 집은 언제든지 지을 수 있으니까 . 우리 집도 그때 다 무너졌는데 그래도 가족은 무사했어요 . 2~3 년에 한 번씩은 고향에 가려고 해요 .

농협과 군청에서 모국방문 지원받아서 갔다 왔어요 . 식구들과 함께 고향 갔을 때도 주로 바다에서 놀았어요 . 내가 놀던 바다에 아이들 함께 갔어요 . 2013 년부터 고산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일하면서 한국말 많이 늘었어요 . 다양한 사람 많이 만나니까 서로 대화하면서 말 잘해요 .

이제 손님들 얼굴 다 알고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 친해지면서 서로 장난하는 사람들 많아졌어요 . 나 장난 좋아해요 .

나 한국말 중에 ‘ 즐겁게 ’ 라는 말을 제일 좋아해요 .” 로르나의 남편이 가장 자주 하는 필리핀 말은 Mahal Kita 마할키타 ( 사랑한다 ) 라는 말이고 , 로르나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말은 즐겁다 (Malipayon 말리파윤 ) 라는 말이라고 한다 .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좋아하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 마할키타 로르나 , 말리파윤 로르나 !

다문화 배구팀 수시모집 문의 로르나 010-6225-4743 연습시간 / 장소 : 일요일 6 시 ~8 시 완주중학교 강당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마할키타 로르나, 말리파윤 로르나!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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