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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7.09.05

떡 빚는 에너줌마가 나가신다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7.09.05 11:33 조회 1,69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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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제대로 가는 떡순이 떡수니디저트 대표 김덕희 한 달에 한번 만들어지는 완두콩 신문 덕에 나의 한 달은 일주일처럼 훌쩍 지나간다 . 게으름이 주특기인지라 시간 내서 게으름 좀 피울 만 하면 마감이 턱 밑까지 찾아온다 . 그래도 착실하게 쓰고 있고 그 덕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배운다 .

완두콩 덕분이다 . 2012 년부터 시작한 연재로 쉰 두 명의 완주사람을 만났다 . 주로 어르신을 만나 그들이 살아낸 인생이야기를 듣고 쓴다 . 할 이야기 없다고 , 별 것 없는 인생이라고 손사래 치지만 모두의 인생은 대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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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 무작정 사람 찾아 헤매던 시기가 지나니 이제는 주변에 제보자도 생기고 제법 기자 흉내를 내기도 한다 . 제보자라고 쓰고 보니 거창하게 들리지만 , 그들 또한 완주에 사는 이웃들이다 .

그들이 만나고 싶은 사람 ,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내가 대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소개해 주는 것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 ‘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 그렇게 마감은 돌아오지만 ,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듯 ’ 운명처럼 운주에서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

“ 떡에 미쳐 사는 재미난 친구가 있는데 한번 만나 봐 줄 텐가 .” 그렇게 쉰 세 번째 완주사람 김덕희 씨를 만났다 . 동해바다에서 완주 만경강까지 흘러온 길 김덕희 (40 세 ) 씨의 고향은 강원도다 . 동해 어촌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 답답할 때면 바라볼 수 있는 망상해변이 늘 곁에 있었다 .

유치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쭉 강원도에 살았다 . 남동생 소개로 경상도 남자를 만났고 결혼도 하게 되었다 . 그 당시 남편은 완주 IC 도로공사현장 일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막연하게 완주에 터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2007 년에 결혼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전주에 이주해서 2012 년에는 드디어 완주에 터를 잡았고 다음 해에 아기가 태어났다 . 하지만 비빌 언덕이 없었다 . 마음 털어 놓을 바다도 없었고 가까운 친구도 없었다 . “ 출산하고 우울증이 많이 심해졌어요 .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완주에서 아이 출산하고 집에서 오로지 아이를 돌보다 보니 산후우울증이 오더라구요 .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 어요 . 원래 제 성향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 성향이거든요 .

이대로 집에 있으면 큰일 나겠다 싶어서 아기 4 개월 좀 안되었을 때부터 업고 다니면서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죠 . 남편도 집에서 우울해 하기 보다는 나가서 배우고 싶은 거 많이 배우라고 지지해줬죠 . 제가 처음에 갓난아기 업고 배운다고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 어머 쟤 미쳤나봐 .

집에 있지 왜 나와서 저러고 돌아다니나 .’ 대놓고 수근 대는 걸 많이 들었어요 . 마음이 상했었지요 . 그래도 꿋꿋하게 배운 거죠 .” 김덕희씨가 만든 떡은 일반 떡이 아니다. 디저트 카페에서 볼법한 생김새와 맛이 있다. 아이업고 방문을 열고 나와 첫 발을 내딛은 곳은 완주근로자종합복지관이다 .

그곳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 옷 만드는 수업부터 떡 만드는 수업까지 . “ 제가 말띠거든요 . 여자 말띠들은 집에 가만히 못 있는 다는 말도 있잖아요 .

저도 집에 있으면 골골대는데 나오면 팔팔 뛰어요 .” 떡으로 소통하는 재미 남편의 당뇨와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더욱더 먹거리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 설탕을 넣지 않고 자연발효시킨 식초를 만들고 밀가루로 만드는 빵보다는 쌀로 만드는 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 2014 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움을 시작했다 .

떡베이킹을 배우기 위해 서울 , 대전 , 대구 , 부산을 휩쓸고 다녔다 . “ 떡 베이킹도 진짜 많이 세분화 되어 있거든요 . 약밥부터 앙금플라워까지 . 서양식 말고 우리나라 떡으로 만드는 각 종 디저트를 배웠죠 . 퓨전 떡 , 떡과 함께 할 수 있는 전통음료와 퓨전음료 들을 다 배웠죠 .

저는 개발하는 쪽으로 소질이 있어요 . 배운 만큼 제 레시피를 개발하기 시작했죠 . 특허도 출현했지요 . 향후 십년의 목표는 다섯 가지의 특허는 내는 거에요 .” 올해 초 전주에서 운영하던 떡디저트카페를ㅈ ㅓㅇ리하고 봉동읍내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덕희씨의 배움은 한 곳에 멈춰있지 않고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었다 . 완주농업기술센터의 청강교육생으로 참여했다가 현재는 농업대학교 발효학과 학생장이 되었다 .

앙금플라워 케잌디자인협회 전북지부장 , 완주군 정보화 농업인 연구회 회원 , 완주청년정책네트워크단 부분분과장 , 떡쑤니디저트대표 , 떡과 퓨전음료 강사까지 .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우울하지 않을까 .

“ 제가 잠을 줄여가면서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지만 생각해 둔 것이 있어서 올해까지는 바쁘게 살 작정이에요 . 올해 바쁜 틈을 타서 농업대학교 발효학과 과정을 공부하고 있거든요 . 배우는 것이 진짜 많아요 . 완주로 오면서 천천히 제대로 하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죠 .” 덕희씨가 만든 떡디저트들.

올해 초 , 전주에서 운영하던 떡디저트카페를 정리하고 봉동읍내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 시골에서 비싼 떡이 팔리겠냐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천천히 제대로 하자는 그녀의 다짐대로 첫 발을 내딛은 거다 . 덕희씨의 떡디저트가게 옆에는 떡 방앗간이 있다 . 같은 듯 다른 참으로 묘한 풍경이다 .

“ 제가 처음에 간판 달 때 , 엄청 경계하셨어요 . 입장 바꿔 생각해도 저도 그럴 거 같아요 . 지금은 언니네 떡 방앗간 가서 쌀 사고 , 알아서 갖다 주는 사이에요 . 가게 오픈하고 소통을 안 하면 제가 뭘 하는지 모르잖아요 . 제가 먼저 다가간 거죠 .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언니가 그러더라구요 . 처음에는 너를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 그런데 딱 보니까 떡 만드는 기술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했던 거죠 . 우리 집에 가래떡 뽑으러 오는 사람 있으면 저는 저 집 소개해주고요 . 저 집으로 떡케익 주문하러 오면 언니가 우리 집 소개해 주고요 .

기름 짜러 온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방앗간 언니가 이상한 떡 좀 먹어보라고 제 떡을 내어주기도 한데요 . 서로 상생이 되는 거죠 .”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등에 업고 현관문을 나선 후 몇 년이 바쁘게 휘몰아쳤다 .

그 사이 덕희씨에게는 ‘ 떡쑤니 ’ 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생겼고 비빌 언덕이 생겼다 . “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은 급할 때 아기 맡길 곳도 생겼어요 .

힘들 때 도닥여 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죠 .” 동네어르신들은 이 집 새댁은 퍼주는 것만 잘하니까 장사하면 안 되겠다고 하면서도 오다가다 가게를 기웃거리신다고 한다 . 아마도 빵 같기도 한 이상한 떡 맛을 찾아오시는 모양이다 .

현장 사진

떡 빚는 에너줌마가 나가신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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