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 이야기 - 한정임 , 전경자 , 유순애 , 엄용자 할머니 이야기 삶의 풍경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명의 이야기 손님을 한꺼번에 만났다 .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데 그냥 좋아서 친구가 된 여섯 친구 모두를 만나면 좋았겠지만 두 분은 개인사정이 있어서 네 분을 만나게 됐고 , 이분들이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죽고 못 사는 친구 사이가 됐는지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
오늘 이야기를 좀 더 실감나게 전해드리기 위해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한 네 분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렸다 . 그리고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된 인터뷰라 이야기들이 가끔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또 실제로 방송되지 않으니 존댓말을 쓰지 않은 점은 널리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
( 스튜디오는 고산미소시장에 있는 소연식당 . 테이블 위에는 안주로 보이는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이 놓여 있다 ) 장미경 ( 오늘은 사회자 ): 안녕하세요 . 고산 장날이면 이곳에 모여서 회포를 푸신다고 들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해 주셨네요 .
오늘 분위기가 하루 이틀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언제부터 만나셨고 만나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여러 가지가 궁금합니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시고 돌아가면서 편안하게 이야기 해주시죠 . 전경자 : 익산이 고향이고 열아홉에 운주로 시집와서 광두소마을에 살고 있어 .
올해 여든 한 살인데 정임이 언니 덕분에 최고참은 아니여 . 어떤 사람들은 우리더러 술 먹는다고 욕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도 하는데 우리는 그냥 뭐 모여서 웃고 떠들고 술도 한잔씩 마시고 그런 재미로 만나 . 자랑할 것도 없고 욕먹을 것도 없지 .
엄용자 딸이 여기서 식당한다고 하니까 주로 여기서 모여 . ( 한정임씨가 뒤늦게 식당으로 들어온다 ) 언니 여기여 . 더운데 뭐헌다고 그렇게 돌아다녀 . 꼬둘배기는 몇 단이나 샀는가 ? 한정임 : 순례 동생이 언제 오냐고 계속 전화허네 . 빨리 가보게 .
나는 호기롭게 사회자를 자청하고 자기소개를 요청했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기세 좋은 할머니들의 입담에 TV 토크쇼를 보는 시청자 마냥 손벽치며 웃을 뿐이었다 . 한정임 할머니는 88 세로 여섯 친구 중에 제일 언니다 . 할머니의 별명은 택배다 .
함께 밥 먹을 때도 반찬 떨어지기 무섭게 새 반찬을 갖다 주고 제일 발 빠르게 무엇이든 갖다 주니 동생들이 ‘ 정임이 형님은 택배 ’ 라며 한바탕 웃는다 . 정임 할머니 동생 순례할머니는 최근에 몸이 안 좋아 율소리에 사는 딸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
매일 보던 친구들을 못 보니 애달파서 아침부터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 병문안 겸 친구들 데리고 가서 한바탕 놀고 싶은 데 막내 용자 동생이 왠지 울퉁불퉁이다 . 큰 언니는 자꾸 막내 눈치를 본다 .
이 모임의 대장이자 막내 엄용자 할머니 엄용자 : 나는 예순 넘어서 치매 걸린 우리 시부모님 똥치우고 사느라 고생했어 . 근데 지금은 부모가 자식들을 안 보고 살라고 혀 . 왜냐하면 너희들 마음대로 살으라고 . 그래서 내가 순례언니한테 막 뭐라고 한 거야 . 뭐헌다고 딸집에서 신세 지냐고 .
나는 나 아프면 바로 요양원 보내라고 자식들한테 당부했어 . (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 옆에 한정임 할머니는 상추 이야기를 한다 . 그러면 전경자 할머니가 말을 거들면서 엄용자 엄마의 자식들 이야기와 상추이야기가 동시에 섞인다 .
상추 이야기를 하다고 고기 구워먹자는 이야기도 하고 ) 그러니까 이렇게 언니들이 엉뚱쌩뚱한 이야기를 툭툭 해싸면 내가 팍 쏴버려 . 쏴놓고도 어떨 때는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 성격이 워낙 급하니까 .
여섯 명 중에서 막내인 내가 성격이 제일 화끈하고 나만 지랄혀 ( 웃음 ) 한정임 : 지랄해도 예뻐 . 귀여워 . 말하는 게 . 엄용자 : 그러니까 왜 맨날 나만 찾어 ? 한정임 : 좋은 게 그려 . 변함없고 , 상냥하고 . 다 좋아 . 근디 성질이 좀 패동패동 해 . 탁탁 쏘지 .
전경자 : 안 겪어본 사람은 서운하다고 하지 . 우리는 아니까 이해를 해 . 우리는 남이 뭐라고 해도 맞춰주는 성격이야 . 그러니까 동생이랑 딱 맞는 거지 . 모두들 첫 인상이 참 좋았어 . 다 마음에 들더라고 . 그래서 계속 보는 거야 . 서로 서로 아껴주고 .
여기서 한 말은 그냥 흘려버리고 말 옮기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야 . 빈덕떨고 그런 사람들도 아니야 . 서로 뭐라도 도와줄라고 하지 . 운주 광두소마을에 사는 전경자 할머니 큰언니 한정임 할머니의 별명은 택배.
밥먹는 와중에도 떨어진 반찬을 살피며 갖다주기 바쁘시다 유순애 : 뭐 있으면 다 주고 잡고 그래 . 여기 용자 동생이 김치도 다 담아서 언니들 퍼주고 그래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산악회에서 만났어 . 십년 넘었을 거야 .
관광차가 동네 돌면서 사람들 태워서 산에 가는데 그때 한정임 , 순례 언니도 보고 이 동생 엄용자도 본 거지 . 그때는 전화번호도 모르고 얼굴만 알고 지냈어 . 한 삼사년 전부터 이렇게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됐지 . 그때 여기 경자 언니도 만나고 . 이렇게 한 팀이 되어서 만나기 시작한 거야 .
나는 호적나이는 일흔인데 진짜로는 일흔 넷이여 . 어우리 신덕마을에 살아 . 엄용자 : 산악회 같이 다닐 때 나는 오십대고 언니들은 육십대였으니까 그때는 술도 잘 마셨어 . 술은 만나면 기분에 마시는 것이지 혼자서는 절대 안 먹어 .
우리도 이제 늙어서 허리도 아프고 그러니까 산악회는 못 다니고 이렇게 식당에서 모여서 회포를 푸는 거지 . 장날만 되면 서로 전화를 하는 해 .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보는 거야 . 나올라냐고 아침에 물어봐 .
나오기 전부터 전화 서로 돌려서 만나자는 약속하고 , 고산서 만나고 놀다가 헤어져서 집에 잘 들어갔냐고 서로 전화를 해 . 전경자 : 재작년에 내가 하루 종일 전화가 안 된 적이 있었어 . 진동으로 해놔서 온지도 몰랐던 거지 .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엄용자 딸 봉고차를 타고 운주면 우리 집에 달려 온 거야 . 다들 놀라서 왔는데 멀쩡히 있던 나도 뭔 일인가 놀라기도 하고 . 내가 시방도 생각하면 .. 아유 .. 얼마나 걱정이 되면 그 먼 길을 달려왔겠나 ... 내가 뭐라고 여기까지들 왔나 싶기도 하고 . 눈물이 나네 .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못 잊어버리고 있지 . 한정임 : 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해 . 참 예뻐 . 항시 사랑해 . 어쩌다 이렇게 늦게 엮어졌지 . 젊었을 때는 자식들 키우고 고생하며 살았지 . 시방도 안 늦어 . 시방도 실컷 만나면 되지 . 지금부터 열심히 만나고 재밌게 살면 되지 뭐가 늦었어 .
아직도 안 늦었어 . 좋은 친구 사이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같은 지역에 살고 생각도 같고 나이도 비슷하면 더 좋을까 . 그냥 좋아서 함께 만나는 여섯 친구들의 유쾌한 수다를 들으면서 알게 됐다 . 친구 사이는 나이도 지역도 각자의 생각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
친구의 소소한 이야기 가만히 들어주고 남 이야기 하지 않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다른 곳에 옮기지도 않는 여섯 친구들은 그냥 그렇게 좋아서 만난다 . 고산 장날 키가 훤칠하게 큰 할머니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다섯 분의 친구들을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손 한번 흔들어 주시라 .
오늘도 내일도 사이좋게 재미지게 지내시라고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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