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구재마을 김성원 어르신 산수유 , 매화가 봄을 알리고 수줍은 꽃길을 따라가 보니 벌써 오월이 되었다 .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피어나고 온통 형형한 연둣빛이다 . 멀리 떠나지 않아도 완주의 곳곳이 절경이다 . 하루 시간을 내서 화암사에 올랐다 .
화암사에 사는 까만 개의 안내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 구재마을 초입의 라일락 무리를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 라일락 나무 너머로 하얀색 , 자주색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만개한 진풍경이었다 . 한참을 바라보고 나니 그제 서야 나무아래 앉아계신 어르신이 눈에 띄었다 .
쭈뼛거리며 다가가 이 꽃나무들의 주인이 어르신이냐고 묻자 , 들어와서 꽃구경 하라 신다 . 봄날의 기운이 가득 담긴 곳 . 이곳은 김성원 (71) 어르신의 평생의 꿈이 담긴 정원이다 . “ 젊은 시절부터 꿈꾸던 것들이었는데 은퇴하고 이제 서야 마련했지 .
마음은 아직도 30 대 청년인데 말이야 , 이제 몸이 안 따라주네 . 일하다 힘들면 이렇게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는 거지 .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노루 사슴이 뛰놀고 들소가 노닐고 걱정 근심 없이 , 아귀다툼 없이 사는 것을 원했지 .” 꽃나무와 함께한 생애 노루 , 사슴 , 들소는 없지만 닭 여러 마리와 듬직한 황구가 있고 정성스런 정원에 감탄한 구경꾼들이 있다 .
어르신의 정원에는 봄꽃부터 시작해 가을까지 늘 꽃이 피어 있어 ,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차를 멈춰 세우고 한참을 구경하다 간다고 한다 .
그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주고받는 다고 하니 , 이쯤하면 정원 해설사 명함을 만드셔도 될 것 같다 . 하얀 민들레가 가득한 정원의 작은 길을 따라 꽃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오색능수도 , 남경도화 , 밥태기꽃 , 옥매화 , 붉은 꽃 마로니에 등 봤지만 스쳐지나갔던 꽃의 이름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 보통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가면 꽃나무들의 이름과 특징 등 정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 하지만 김성원 어르신의 설명은 독특한 점이 있다 .
모든 꽃나무들의 생애사를 이야기 해주신다 . 마치 함께 자란 누이 이야기 하듯 , 어르고 달래서 키운 자식 이야기 하듯 말이다 . 꽃나무들의 나이가 대부분 오십년에서 이십년에 이른다 . 이십대 청년 시절부터 함께 했던 꽃과 나무들이니 그저 식물이 아닌 가족과도 같은 것이다 .
꽃나무들의 생애사를 듣다 보니 어르신의 생애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 정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꽃나무는 71 년도에 심은 철쭉이라고 한다 . “ 내 여동생이 정읍으로 시집을 갔는데 어머니가 딸집에 갔다 오면서 그 집 마당에 철쭉을 몇 뿌리 가져온 것을 내가 심었지 .
그 철쭉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거지 . 우리 아들들 보다 나이가 더 많아 , 저 놈이 . 우리 집에 있는 철쭉들은 대부분이 저 놈 자식들이야 .” 오래 전에 데려온 나무가 새로운 땅에 적응해서 번식하는 것 . 이것을 ‘ 자식을 낳았다 ’ 라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
어르신의 정원은 마치 복작거리는 대가족 같다 . 작은 나무들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 “ 이 나무의 할머니도 있겠네요 ?” 어르신은 주저 없이 작은 나무의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신다 . 그렇다면 라일락의 할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 . 앞마당에 앉아 쉬고 계시는 김성원 어르신.
라일락과 할머니 김성원 어르신의 고향은 덕천리다 . 지금은 삼봉지구 택지개발로 마을의 흔적이 사라진 곳이다 . 고향을 떠나 이주할 곳을 찾아야 했다 . 가족과도 같은 나무들을 다 데리고 가야 해서 땅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
고심 끝에 경천으로 터를 결정했고 2009 년에 나무들의 대이동이 있었다 .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고 자갈이 많은 녹두밭 웃머리였다 . 1 년 동안 아들들과 작업하면서 나무 이사를 마치고 2010 년이 돼서야 사람이 이사 왔다 . 청년시절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 땅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
1974 년 고향 땅에 심었던 라일락나무는 경천으로 이주해서 대가족을 이뤘다 . 덕천리는 어르신의 할머니 때부터 살았던 곳이다 . 어르신의 할머니는 故 정기향님으로 덕천교회 설립자다 .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운동을 하셨던 분이라고 한다 .
할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어르신의 평생 신념은 자유와 평등이다 . “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 . 어린 시절에 느낀 것이 , 그 작은 동네에서도 왜 힘 있는 사람은 잘 살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못살아야 하는 것인가 . 왜 평등하지 못한가가 늘 불만이었어요 .
지금도 변함없어요 . 자유평등이라는 내 평생 신조가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유로운 것을 좋아해서 취직할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 집안에 논밭은 있으니까 , 그냥 농사짓고 살라고 했지 .
그런데 집안의 아들은 나 하나고 어머님이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어서 아들 하나 있는 거 꼭 대학 나와서 직장생활 했으면 했던 거지 .” 23 살 무렵 시작한 교사생활이 평생직장이 되었다 . 중학교 교사생활 할 때도 선생님 반의 급훈은 언제나 ‘ 서로 사랑하며 참되게 살자 ’ 였다고 한다 .
성인이 된 졸업생을 언젠가 길에서 만났는데 반갑게 인사하면서 잊지도 않고 급훈을 크게 외쳤다고 한다 . “ 나는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사람 괴롭히는 것은 못 봤어요 . 우리 반에서 그런 일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지 . 학교에서 주먹 좀 쓴다는 놈들이 우리 반 되면 끽 소리를 못했지 .
나는 언제든 약자 편이었으니까 .” 꽃을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했던 장인어르신이 장계에서 200주 넘게 캐서 한 트럭 보내주신 목단. 김성원 어르신의 아름다운 정원. 귀한 꽃구경하러 언제든 오시요 어르신 정원의 꽃나무 이야기가 풍성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돈이 오가는 거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 수소문해서 귀한 나무나 꽃을 키우고 있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 그곳이 어디든 말이다 . 도인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꽃나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나보다 . 자신의 집에서 귀한 꽃나무를 가지고 가서 다른 집의 것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정원은 풍성해졌다 .
모든 꽃나무가 소중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꽃이 목단이다 . 이 목단의 생애사를 물었다 . “ 장인어른 댁에 있던 꽃인데 그 분도 꽃나무를 좋아했지 . 취향이 비슷한 사위를 얻어서 좋으셨나봐 . 처갓집이 장계였는데 그 멀리서 목단을 캐다가 200 주 넘게 한 트럭 보내주셨지 .
자주색 목단은 많은데 노랑목단은 참 귀하거든 . 귀하게 여겨서 가깝게 두고 보려고 집 바로 옆에다 심었지 .” 얼마 남지 않았다 . 아주 잠깐 피었다 지는 귀한 노랑 목단이 5 월 5 일쯤이면 만개한다고 한다 . 새참거리 사들고 어르신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소풍 가야겠다 .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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