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너멍굴 농부 진남현 언제나 모든 것은 변한다 . 그 변화에 잘 장단을 맞추면 시대의 인물이나 부자가 될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며 자리를 지키는 자들도 있다 . 5 년 전 , 너멍굴이라는 골짜기에 농토를 마련하고 들어왔다 .
논과 축사뿐인 골짜기를 바라보며 , 향후 200 년은 개발되지 않을 땅을 원했던 나는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 되리라 확신했다 . 5 년이 지난 지금 , 너멍굴도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 내 확신은 그저 바람에 불과했던 것인가 . 너멍굴 농업의 별이 졌다 .
처음 들어올 당시에도 경작지 중 일부는 놀고 있었다 . 그나마 볕이 잘 들고 관리된 농지만이 마을에 사는 어르신 서너 분에 의해 일궈지고 있었다 . 그 중 골짜기의 가장 큰 지주는 소막 어르신이라 부르는 70 대 노인이었다 .
그는 너멍굴에 축사와 감나무 밭 , 마늘밭 , 논과 더불어 땔감을 공급하는 뒷산까지 소유한 그야말로 너멍굴 큰 손이었다 . 그 중에서도 그는 골짜기로 들어오는 길을 소유하고 골짜기를 통제하고 있었다 .
그는 그 길을 통해 들어오는 변화와 개발의 바람을 막아서고 , 자신의 농토가 피해 받지 않는 정도의 길만 열었다 . 그 덕분에 남향의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골짜기는 전원주택단지가 아닌 농토로 이어져 왔다 . 그러나 세월의 바람은 그도 막아서지 못했다 .
석유라는 머슴이 아무리 일을 도와도 그의 기력은 쇠잔해졌다 . 소주를 물처럼 마시며 , 셔츠단추를 모두 개방한 그의 무사적 농촌차림은 점차 귀한 풍경이 되었다 . 급기야 올해는 골짜기 경작의 핵심인 마늘밭과 감나무 , 논 모두를 놓아주었다 . 그의 기운이 사라지자 땅은 곧 야생의 흔적이 살아났다 .
그렇게 땅을 야생으로 돌려준 건 소막 어르신뿐 아니었다 . 골짜기 농토의 20% 정도를 경작하던 한 어르신도 몇 년 전부터 논을 생태습지로 만들었고 , 그 자리는 동네 멧돼지들의 공중목욕탕이자 ,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 여기까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버려진 농토에 야생의 기운만 넘쳐났다면 말이다 .
그 속에서 쇠스랑과 낫으로 전근대적 농업을 영위하던 내가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희미해진 별빛 사이로 개발의 마수는 새 광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
친분과 혈연으로 이어진 지역사회와 쇠잔해진 기력이 만나면서 , 결국 개발동의서에는 어르신들의 서명이 들어섰고 , 너멍굴 생태습지와 휴경지들에는 태양광패널이 수천 평씩 들어섰다 . 이제 골짜기는 도시로 땅의 기운을 파는 것에서 나아가 빛을 팔기 시작했다 .
물이나 공기를 판다고 했을 때와는 다른 상품이었다 . 환경과 생태의 명분을 뒤집어쓴 새 상품은 소비자의 도덕심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상품이었다 . ‘ 환경 ’ 이라는 이름아래 ‘ 규모화 된 개발 ’ 이 시작됐다 . 도시는 농촌의 사람을 잡아먹고 , 이제는 농촌의 바람과 태양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
바야흐로 진정한 21 세기가 도래하고 있다 . 환경과 스마트가 안 들어간 상품은 명함도 못 내미는 세상이 온 것이다 . 변화를 싫어하는 촌부가 종이매체에 언제까지 전근대적 일상을 투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그래도 . 희망은 있고 , 삶은 이어진다 .
5 년 전 , 너멍굴의 비렁뱅이 1 인 가구는 이제 3 인가구로 늘었고 , 한 쌍의 닭은 50 여 마리가 되었다 .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 이토록 스마트한 시대 , 의미 있는 지면에 글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 . 결국 너멍굴엔 여전히 진남현이 살고 있다 .
/진남현(너멍굴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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