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나무를 깎는 힘으로 순식간에 오르는 바위
- 고산면 덕암마을 이광민 씨 이야기
고산면에서 큰길로 오르는 길목에 덕암마을이 있다. 열두 번의 가을을 맞이하는 동안 숱하게 오고 갔던 길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평범한 시골 마을 안에 누군가가 구축한 깊고 단단한 세상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그 누군가는 불상조각가(나운불교조각, 국가무형문화재 108호 이수자, 문화재 목조각수리 기능자 2149호)이자 클라이머(암벽등반가) 이광민씨(1967년)다.
오고 가며 무심히 보았던 나무대문집이 이광민씨의 작업실이다. ‘나운불교조각’이라는 이름으로 터를 잡은 것이 30년이 되어가는데 나는 왜 이곳의 존재를 몰랐을까.
“내가 속세에 나가 속인들 만날 일이 뭐 있나. 불상 깎으니까 스님들만 상대하지 뭐.”
나무조각을 좋아하던 소년이 불상조각하는 청년이 되기까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9살에 서울에 가서 살게 된 이광민씨는 유난히 나무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손재주가 좋아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건축설계를 전공했다. 고3때 대학진학을 위해 투시도 관련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갔는데 우연히 목공예 책을 보고 나무조각하는 일에 꽂혀 직업훈련소를 택했다.
“불상조각은 20살 때부터 했어요. 목공예도 급수가 있어요. 직업훈련소에서 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1등급으로 불상조각하고 그 다음은 가구조각, 그 다음은 시중물건조각을 하죠.
한창 일 배울 때는 자료가 없어서 전국의 절을 다 돌아다녔지. 자료가 없으니까 오로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닌 거지. 궁금증 때문에. 휴가만 생기면 버스타고 서울서 해남까지 내려가서 절 찾아 다니면서 필름카메라로 찍고 내 자료 모아놓고. 직접 보면 달라요. 그냥 사진만 보는 거랑 달라요. 만약 그때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로 배우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 같아. 스무살 무렵의 열정이나 절실함 때문에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있는 거 같아요. 내 마음이 절실하지 않으면 작은 것이 보이지 않거든요. 칠불사 갈 때는 버스타고 화개장터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서 불상보고 사진 찍고 다시 내려와서 개천 한번 보고 산딸기따먹고 또 다른 절로 걸어가고. 남들 여름휴가 즐기는데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절을 찾아갔지. 나는 그게 좋았으니까.”
서울 살던 이광민씨가 완주에 터를 잡게 된 것은 금산사 화재 때문이다. 1986년 금산사 대적광전에 원인 미상의 불이 나 전소되었고 1990년에 복원되었다. 대적광전 복원을 위해 전국의 불상조각가, 목수들이 모여들었고 이광민씨는 복원완성 1년 전에 합류해서 금산사에 상주하며 마무리 작업을 함께했다. 그 뒤 29살에 스승으로부터 독립해 작업실을 찾던 와중 완주 덕암마을 지금의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9살에 독립했을 때 진짜 시건방졌어. 내가 불상조각을 제일 잘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스님들이랑도 대판 싸우고 그랬지. 대판 싸웠어도 2년 있다가 전화 오면 또 일하고 그러죠. 어떤 절은 작업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주기도 하고, 좋은 스님들은 하필이면 절이 가난해요. 그럼 내가 손해보더라고 해드리는 거야. 그런데 어떤 스님이 그러시더라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다 돌고 돌아 돌아온다고. 아닌게 아니라 돌아오더라고. 나는 이 일 하면서 세상이 참 공평함을 느껴. 어떤 절에서 손해를 보면 꼭 엉뚱한 다른 곳에서 이익이 돌아오더라고. 봄 오면 여름 오고 가을 오는 이치랑 똑같아. 손해보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하고 그냥 해. 근데 돌아오는 주기가 10년이야.(웃음) 너무 오래 걸려 인내를 많이 해야.”
불상조각작업실 옆 레전드클라이밍짐
이광민씨가 유일하게 속세에 나가 속인들을 만나 즐기는 취미는 암벽등반이다. 산악부대에 입대해 지긋지긋하게 산속을 뛰어다니면서 죽어도 산은 오르지 않으리 다짐했지만 불상조각하다가 쉬고 싶을 때는 저절로 산으로 향했다. 전국의 산들을 오르다가 바위를 넘고 싶어 등반을 시작하게 되었다. 등반인생 30년이 되어간다.
불상조각 작업실 옆의 공간이 무엇인가 했더니 암벽등반 연습하는 암장이었다. 청소년 클라이밍 국가대표 선수들도 종종 방문해 연습하고 이광민씨가 지도하기도 한다.
간판은 없지만 구글지도에 ‘레전드클라이밍짐’을 검색해 보시라.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기울어진 벽면에 알록달록 빼곡하게 박혀있는 홀드(벽을 오를 때 잡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에 압도되고 만다.
“짧은 시간 동안 밑에서 정상까지 순식간에 올라가잖아. 그 쾌감이 굉장해요. 그걸 딱 끝냈을 때는 힘이 하나도 안 들어.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좋아요. 내가 하는 일은 몇 십년을 해야 입에 풀칠하고 실력도 천천히 느는데 등반은 내 힘으로 잠깐 올라가면 금세 올라갈 수 있는 거지. 내 삶의 돌파구야. 잠깐 오르면서 즐거움, 해방감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이광민씨는 아직도 불상의 입부분 표현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 처음 불상조각을 시작할 때는 부처님 머리카락 돌려 깎는 일을 수없이 했다. 스승이 인정하면 이제 다음 단계를 조각하는 것이다. 불상의 뒤쪽 옷 주름을 잘 깎으면 앞쪽 옷 주름을 깎는다. 그러다가 가슴부분을 깎고 손을 깎고 눈과 코를 깎다 보면 입에 다다르는 것이다. 미묘한 미소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때 불상은 볼륨이나 윤곽이 또렷해서 깎기에는 훨씬 쉽죠. 그런데 밋밋하고 단순할수록 흉내내기 어려워요. 입부분을 잘 못 깎으면 새침데기 부처님이 돼요. 아흔이 넘은 우리 사부님은 지금도 힘들어하세요. 입부분 조각할 때 이 부분은 평생조각해도 힘든 부분이에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29살에 독립했지만, 그때부터 조각인생이 시작된 거 같아요.”
스무 살에 조각을 시작해서 20년 차가 되니까 비로소 걸음마를 하는 것 같고 30년차가 되니까 조금 알겠고 내년이면 40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힘빼고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좋은 은행나무를 골라 겉목을 쳐가며 세심하게 조각을 하면 속을 파내야 겉이 갈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6개월 가량을 말려서 세모시로 배접을 하고 그 위에 옻칠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열 번을 거친 뒤 금박을 붙이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불상의 기준은 무엇이냐 물었다.
“봐서 좋으면 좋은 거에요.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순수하게 봤을 때 좋으면 좋은 거야.”
/ 글·사진=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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