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영화 <더 펠링(The Felling)> 완주 상영을 마치고
나무를 지키는 밤, 민주주의를 다시 배우다
글=김기수(완주녹색평론읽기모임)
지난해 12월 9일 저녁,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날, 완주의 작은 상 영 공간에는 묘한 온기가 돌았습니다. 영국 셰필드 가로수 벌목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펠링(The Felling)〉을 함께 보고, 우리 동네 나무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 영화 상영회가 열린 덕분입니다. “그냥 환경 다큐 한 편 보겠지.” 하고 들어왔다가, 상영이 끝난 뒤에는 표정이 조금 달라진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더 펠링>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셰필드 시민들의 6년 싸움을 담은 영화입니다. 시 행정은 도시 인프라 개선을 명분으로 17,500그루 의 가로수를 베어내려 했습니다. 행정의 설명은 “노후 수목 정비와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였지만, 시민들의 눈에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동네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시설물’로 취급되어 사라지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셰필드 나무행동그룹(STAG)’을 만들어 나무에 하트 장식을 걸고, 새벽마다 벌목 현장에 나와 공사 차량 앞을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연행과 재판도 이어졌지만, 영화는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을 집요하게 비춥니다. 스크린 속 장면은 분명 영국의 거리인데, 상영회에 앉아 있던 완주 주민들 눈에는 전주천, 제주 비자림로, 완주 신흥계곡의 몇몇 풍경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 싸움은 나무를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행정의 비민주성을 폭로하며 시의회 시스템을 바꾸는 정치 개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나무를 지키려던 마음이 도시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동력이 된 셈입니다.
상영 후에는 한국의 나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도로 확장 공사에 맞서 숲을 지키는 제주의 비자림로 활동가들은 “뭐라도 하다 보면 뭐라도 이어진다”며 희망을 전했고, 완주 신흥계곡의 단풍나무 이식 사건을 겪은 완주 자연지킴이연대 이선애 활동가는 나무를 단지 ‘제거 대상’으로만 보는 행정의 시선에 깊은 문제의식이 담겨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날 완주 상영회에는 제주·전주·완주·서울에서 온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나무를 매개로 경험을 나누는 장면은, 지역을 넘어선 생태 민주주의 연대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셰필드에서 12,000여 그루의 나무를 살려낸 것처럼, 제주에서 공사를 멈추게 하고 벌금을 물린 것처럼, 전북도 감사위원회의 경고를 끌어낸 것처럼, 완주에서도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서부터 변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나무를 지키는 일은 결국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말이 그날 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완주 신흥계곡의 단풍나무, 전주천의 버드나무, 그리고 제주 비자림로의 삼나무를 지나칠 때 이 상영회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작은 인사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우리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
그 인사가 모여, 완주만의 ‘생태민주주의’를 키워가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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