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멋진 한 영화인을 추모하며
(22) 스트라이샌드 - 추억
기억들이여, 내 마음 구석구석을 밝혀다오
물빛 안개처럼 아스라한 그때 우리들에 대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가 부른 [추억](“The Way We Were”)은 단순한 영화 주제곡이 아닙니다. 사랑과 추억,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불멸의 명곡입니다. 1973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와 함께 발표된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습니다.
청춘시절 자주 듣던 이 노래를 제가 참 좋아하던 영화인 레드포드(Robert Redford)의 부음 소식을 듣고 추모의 마음을 담아 소환합니다. 영화 [스팅], [내일의 향해 쏴라], [아웃 오프 아프리카] 등을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해준 영원한 영화인, 배우이자 감독이며 ‘선댄스 영화제’를 탄생시키는 등 세계 영화사에 굵직한 획을 긋고 떠난, 참으로 멋진 배우를 추모하며 반복해 듣고 있습니다.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조심스레 펼치듯 서서히 감정을 쌓아 올립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고조되며, 끝내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그리움을 애절하게 토해냅니다.
가사 속 화자는 한때 사랑했지만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이를 떠올리며, 그 시절의 기억을 ‘그때의 우리’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 시간이 아닙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음과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던 한 시대의 공기까지를 끌어안은 말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와의 연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이 연출한 영화 [추억]은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허블(로버트 레드포드)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케이티는 이상주의적이고 열정적인 사회운동가입니다. 반면 허블은 매력적이지만 세상사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는, 그야말로 ‘황금소년’ 같은 존재입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만났으나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강렬한 끌림은 끝내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단순한 멜로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광풍에 휩싸인 매카시즘 시대가 다가오면서, 케이티의 정치적 신념은 허블의 안전한 삶과 충돌하게 됩니다. 사랑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시대적 현실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케이티와 허블은 뉴욕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칩니다. 그 짧은 만남 속에서 케이티는 허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서로 현재의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허블은 미소 짓지만 그 미소 뒤에는 다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때 이 노래가 흐르며 관객의 마음을 끝내 허물어뜨립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두 사람의 이별을 넘어서, 사랑과 신념, 개인의 행복과 시대의 요구 사이의 비극적인 간극을 보여줍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영화에서 허블 역을 맡으며, 1970년대 미국 남성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했습니다. 잘생긴 외모, 따뜻한 미소, 그리고 은근한 쓸쓸함을 간직한 연기는 그 자체로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개인적 선택과 시대적 압력의 충돌을 체현합니다. 허블은 정치적 신념을 위해 싸우는 케이티를 사랑하지만, 결국 자신은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선택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갈등은 단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비춘 거울이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다시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곡을 한 세대가 잃어버린 이상과 젊음을 추모하는 노래로 기릴 것입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허블의 황금빛 미소를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는 케이티처럼. 사랑은 끝날 수 있지만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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