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에 듣는 추모와 위로의 노래
(27) 코언의 [할렐루야]
분노와 절망의 마음을 가눌 수 없습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전쟁 폭력이 난무하다니! 미국의 폭격으로 165명의 어린 여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전해졌습니다. 교실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폭탄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던 아이들이 전쟁의 통계 숫자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은 늘 거대한 명분을 앞세웁니다. 안보, 민주주의, 심지어는 평화를 들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말들의 아래에는 언제나 여지없이 망가진 일상의 삶이 있고 이름 없는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전쟁의 결정을 내린 지도자들은 안전한 곳에 있고 폭탄은 늘 가장 약한 사람들 위에 떨어집니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면 인간이라는 종족이 과연 문명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전쟁을 설명하는 정치의 언어는 인간의 슬픔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죽은 아이들을 설명하는 데 전략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여 이러한 야만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노래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노래일 것입니다.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기 전에 인간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노래 말입니다.
그런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할렐루야](“Hallelujah”)입니다. 이 노래는 캐나다의 시인이자 가수 코언(Leonard Cohen)이 남긴 가장 깊은 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할렐루야는 원래 히브리어로 “신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코언이 노래하는 할렐루야는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환희의 찬가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의 할렐루야는 상처 입은 인간이 겨우 입술로 내뱉는 기도에 가깝습니다.
노래는 성서의 인물 다윗이 연주하던 신비로운 화음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곧 코언은 인간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다윗의 신비로운 화음을 듣지 못합니다. 조화를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갑고, 부서진 할렐루야” 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이 표현은 인간의 신앙과 삶을 정확하게 짚고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랑도 실패하고 정의도 흔들리며 세계는 자주 잔혹합니다. 전쟁 속에서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거룩한 찬양’이라는 말은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코언은 거룩한 할렐루야 대신 ‘부서진 할렐루야’를 부릅니다. 믿음의 노래가 아니라 의심과 슬픔 속에서 겨우 견뎌내고 있는 인간의 마지막 읊조림입니다.
전쟁의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의미가 더 또렷해집니다. 폭격 속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집을 잃고 떠돌아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실에서 죽어간 아이들. 그들에게는 거창한 신학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할렐루야.” 강하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부서졌기 때문에 부르는 탄식입니다.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지만 음악 속에서는 잠시 침묵이 찾아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이 끝없는 역사 속에서도 그래도 인간에게는 아직 노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 노래는 단순히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을 넘어 현대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영혼의 언어로 자리매김한 찬가입니다. 이 노래는 코언의 전체 음악세계 안에서도 정점의 위치를 차지하며 동시에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전 세계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세계는 여전히 냉혹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찬바람을 뚫고 매화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풀들이 다시 올라오듯 우리들 마음에도 희망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 희망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조용한 노래 한 곡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이런 노래가 존재합니다. 상처 입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부서진 세계 속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노래. 그 노래를 듣는 동안 우리는 잠시라도 인간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따라 불러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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